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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로 변한 튀니지의 구세주 '로보캅(사이에드 대통령의 별명)'

    이현택 기자

    발행일 : 2022.08.29 / 국제 A1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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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의 봄' 발원지… 북아프리카 유일의 민주체제 10년만에 끝

    지난 2011년 '아랍의 봄'이 시작돼 중동과 북아프리카 민주화 운동의 산파 역할을 했던 튀니지가 급격하게 1인 독재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또,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몰아낸 뒤 양대 정파 간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리비아에서도 최근 몇 년 새 가장 큰 총격전이 발생, 190명 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한때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꿈꿨던 북아프리카 지역이 다시 혼돈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지난 24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튀니지 독립고등선거청(ISIE)은 "지난달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강화한 개헌안이 94.6% 찬성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로써 카이스 사이에드(64) 대통령은 총리 등 행정부 수반 임명권, 의회 해산권, 판사 임명권, 군 통수권 등을 갖게 됐다. 입법과 사법, 행정의 핵심 권한을 모두 갖게 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 헌법은 또 사이에드가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대통령 임기와 관련,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 뒤, '임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임기를 임의로 연장할 수도 있도록 했다. 알자지라는 "사이에드가 이 규정을 이용해 종신 집권할 수 있다"고 전했다.

    투박한 말투와 뻣뻣한 태도로 '로보캅'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 2019년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권을 갈아엎겠다며 정계에 전격 입문했다. 헌법학자 출신으로 1994년부터 튀니스대·카르타고대 등에서 25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완고한 원칙주의자로 유명했던 그는 수업에 지각한 사람은 당일 수강을 금지했으며, 잡담하는 사람은 1회 경고 후 내쫓았다. 하지만 낡은 푸조 차량을 타고 다니고 시내 커피숍에서 격의 없이 제자들과 토론하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2019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결선투표에서 72.72% 득표로 압승했다. 특히 18~25세 젊은 유권자 지지율은 90%가 넘었다.

    아랍의 봄 때 정권을 잡은 지금의 제1 야당 엔나흐다를 국민이 철저히 외면했기 때문에 사이에드가 집권할 수 있었다. 엔나흐다는 공무원 수를 늘리고 급여를 대폭 올리는 등 무분별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해 경제를 파탄 냈다.

    하지만 이번엔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사이에드가 독재로 치달았다. 정치 개혁의 당위만 있을 뿐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코로나로 경제가 악화하고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자 의회 기능을 정지하고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박탈했다. 총리도 일방적으로 해임했다. 올해 들어서는 사법부 장악에 나섰다. 지난 2월 재판부 독립을 감독·지휘하는 헌법 기구인 최고사법위원회(CSM)를 해산했다. 또한 판사 임명 거부권과 해임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판사의 파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포고령도 내렸다.

    올해 튀니지인의 구매력은 2010년에 비해 40% 떨어졌고, 튀니지 디나르화 가치는 60% 폭락했다. 공공부채는 5배로 늘었고 정부 재정은 공무원 월급을 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아랍의 봄 이후 국제 NGO들이 북아프리카 본부를 튀니지에 세우고 많은 원조금을 튀니지에 공여했지만, 부익부 빈익빈만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튀니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40억달러(약 5조300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요청한 상태다.

    사이에드에 대한 민심 이반도 나타나고 있다. 이번 개헌 투표에서도 투표율이 30.5%에 그쳤다. 현지 인권운동가 시헴 벤세드린은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 인터뷰에서 "사이에드는 선거 기간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약속을 배신하고 정반대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한편, 카다피 실각 이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리비아에서는 권력 투쟁을 벌이는 임시정부 2개가 무력 충돌,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지 알아흐라TV에 따르면 27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민병대 간 총격전이 발생해 최소 32명이 사망하고 159명 이상이 다쳤다.

    [그래픽] 북아프리카 위치도 / '아랍의 봄' 이후 북아프리카는?
    기고자 :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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