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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딜리셔스

    유석재 기자

    발행일 : 2022.08.27 / Books A1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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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롭 던·모니카 산체스 지음 | 김수진 옮김 | 까치333쪽 | 1만8000원

    개는 코 앞부분으로 먼저 냄새를 맡은 뒤 음식을 맛본다. 하지만 사람은 음식을 먹는 순간 휘발성 물질이 코 뒤쪽 통로인 후비강으로 올라와 맛과 향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코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입과 코를 나누는 기다란 뼈인 가로판(transverse lamina)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런 진화를 촉발했나? 이것은 좀 더 향기롭고 맛있는 향미(香味)를 추구하겠다는 인류의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식(美食)을 추구하는 인류의 본성이 오랜 세월 인류의 진화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부부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롭 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교수와 인류학자 모니카 산체스는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이런 흥미로운 가설을 세우고 추적에 나선다. 지금껏 학계에서 과거 인류의 식생활을 다룰 때 무시되기 일쑤였던 쾌락이나 맛있음(deliciousness)의 관점으로 인류 진화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 본 것이다.

    탄자니아 곰베 숲의 침팬지들은 나무 막대기를 일정한 길이로 잘라 개미집에 쑤셔넣는다. 개미들이 막대기를 공격하느라 달라붙으면 침팬지는 막대기를 꺼내 거기 붙어 있는 개미들을 입술로 한번에 훑어서 먹는다. 돌로 견과류를 쳐서 꺼내 먹는 침팬지도 있다. 침팬지가 이렇게 초보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걸 보면, 600만년 전 인류의 조상들이 도대체 왜 도구를 발명하게 됐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맛있는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음식보다, 더 달거나 더 풍미가 있거나 더 큰 즐거움을 주는 음식을 얻기 위해 도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약간의 자유의지가 '맛있음'을 추구하면서 인류 역사에 일탈이 생겨났고, 그것이 주는 쾌락이 인간 진화의 중심이 됐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음식을 도구로 자르거나 불로 굽거나 발효시키면 영양분을 더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충분한 에너지를 얻게 된 뇌는 점점 커졌다. 음식을 부드럽게 조리해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치아는 작아졌으며 턱도 약해졌다. 대장(大腸)의 생야채 소화 능력은 떨어졌고, 많은 성인에게서 유당 분해 효소가 지속돼 유아기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유를 마시고 소화할 수 있게 됐다. 생태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매머드, 마스토돈, 땅늘보 같은 거대 동물들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바로 그 이유로 멸종됐다.

    향미를 깨닫게 된 인간은 더 나아가 향신료와 포도주, 발효 생선처럼 단계를 높인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됐다. 금욕 생활을 했던 유럽의 수도승들은 훨씬 쉽게 치즈를 만들 수 있었는데도 굳이 복잡하고 노동집약적인 방법으로 숙성 연성 치즈를 제조했는데, 감칠맛이 있는데다 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고추 속 활성 성분인 캡사이신은 사람의 입에서 불이 난 것 같은 고통을 주는데도 사람들은 고추를 잘만 먹는다. 고통에서 얻는 최고조의 쾌감을 즐기는 동시에 그 고통이 실제로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 정도로 똑똑한 미식가가 바로 인간이라는 얘기다.

    저자들은 인간 종을 일컫는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사람)의 '사피엔스(sapiens)'는 원래 '맛보다'는 뜻에서 '식견이 있다'로 바뀐 동사에서 유래한 단어라며, 인간이란 본래 '맛을 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음식을 가운데 두고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의사소통 능력도 진화했을 것이란 얘기다. "우리는 다 함께 모여 앉아 한 번에 한 입씩 세상을 이해해간다."

    세계 각지를 방문하는 저자들의 호사스러운 미식 기행이 곳곳에 삽입된 이 책은, 기이하게도 인류사 전체에 걸쳐 있는 기아(飢餓)와 궁핍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미식 열풍이 분 것이 최근의 일임을 생각하면 인류의 '본성'을 되찾는 일에도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기고자 : 유석재 기자
    본문자수 : 198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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