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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 스러진 시각장애인… 가족 울린 'SOS 손자국'

    신지인 기자

    발행일 : 2022.08.27 / 사회 A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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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라 화재로 4층 집 현관서 쓰러진 채 발견… 곳곳 처절한 탈출시도 흔적

    지난 25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빌라. 4층에 있는 약 9㎡(2.7평) 원룸 안은 온통 검은 잿더미가 내려앉아 있었다. 하루 전인 24일 오전 12시 20분쯤 이 건물 2층에서 불이 나면서 검은 연기가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이 방에 있던 중증 시각장애인 최모(51)씨가 숨졌다. 그의 방 안팎에는 최씨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가득했다.

    최씨는 불이 났을 때 방에서 제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기 집 현관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연기에 질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도로 통하는 현관 문까지는 열었지만 거기서 주저앉은 것이다. 현관 문 잠금 장치 주변으로는 누군가의 손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가득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최씨가 대피하기 위해 문을 빨리 열려고 애썼던 흔적 같아 보였다. 방 안도 비슷했다. 싱크대 앞에는 그가 짚고 걸어가며 생긴 것으로 보이는 손바닥 자국이, 흰 벽에는 손가락 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쓰러진 생수통과 먹다 남은 황태국밥 컵밥이 그대로였고, 방 한복판에는 열려 있는 노트북 한 대와 스피커 두 대가 검은 재에 덮여 있었다. 컴퓨터에 연결된 스피커로 노래를 듣는 게 그의 취미였다고 한다.

    최씨가 이 빌라로 이사 온 것은 이번 달 1일. 그는 원래 서울 양천구에서 안마원을 운영했는데, 2020년 초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폐업 후 5000만원 가까이 되는 빚만 생겼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파산 신청을 했다. 그럼에도 최씨는 재기(再起)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매달 133여 만원의 지원을 받으면서 각종 자격증과 학위를 따려고 공부를 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장애인이었던 만큼 평생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일을 주로 찾았다고 한다. 5년여 전에는 서울의 모 전문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관련 시간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최씨의 둘째 남동생 최모(43)씨는 "누나는 2009년 사회복지학 학사, 2014년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땄다. 그 뒤로도 아동심리상담사나 방과후아동지도사 등 자격 수업을 끊임없이 들으면서 주로 남을 위한 공부를 했다"고 했다.

    그는 직접 신청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복지 신청주의'의 한계에도 맞닥뜨렸다. 은평구청 장애인복지과에 따르면, 최씨가 마지막으로 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받은 건 작년 9월이었다. 1년 가까이 공백이 있다. 최씨의 첫째 남동생은 "처음엔 주변인 도움으로 활동 지원을 받았는데, 1년여 전부터 누나와 어머니가 활동 지원을 어디서 어떻게 신청하는지 몰라 어머니를 도와줬던 요양보호사가 누나를 간간이 살폈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장애인 활동 지원 사업은 심야 시간을 포함해 장애인이 원하는 시간대를 지역 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하면 한 달 최대 120시간까지 활동 지원이 가능하다.

    가족들은 최씨가 1년 가까이 장애인 활동 지원을 받지 못해 동네에서는 집 인근 10m 반경의 편의점 정도만 갈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외출하는 것 외에는 집에만 있는 생활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26일 오전 은평구 갈현동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최씨의 빈소에는 고인이 생전에 취득했던 인권교육강사·보육교사·아동미술심리상담사 등의 자격증 20여 개와 세종사이버대 사회복지학사 학위증이 놓여 있었다. 최씨의 어머니는 영정 앞에서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 하고 한번만 불러줄래…"라고 흐느꼈다. 빈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최씨는 베풀기를 좋아하고,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큰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안마원을 운영할 때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직원 5~6명의 생일마다 큰 케이크와 용돈을 줬다고 했다. 그의 첫째 남동생은 "누나는 '우리 동생 행복해야 해' '우리 가족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자'라는 말을 자주 하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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