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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한중 수교 30년, 중국 앞에 우뚝 선 대한민국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발행일 : 2022.08.26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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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은 대만을 거쳐 방한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았다(8월 3~4일). 비난 여론이 컸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가르는 '가치 외교'로 '펠로시 패싱'을 비판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중국에 엎드린 문재인 정권을 윤 대통령이 질타한 데다 한국 사회엔 반중 정서가 거세다. 하지만 윤 대통령 선택은 현명했다. 외교는 감정이 아님을 대한민국 국가이성이 웅변하기 때문이다.

    펠로시 대만행은 미·중 전쟁을 부를 뻔했다. 대만 전쟁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엄포로 여긴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직시해야 한다. 바로 6개월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예측한 전문가는 없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 군부도 펠로시 대만행을 반대했다. 미국 조야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대만 위기를 부추긴 펠로시를 비난했다. 제국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를 여력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인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터지면 한반도가 직격탄을 맞는다. 국가이성의 냉정한 판단이다.

    한·중 수교 30주년, 펠로시 사태는 '중국 문제'의 폭발성을 증언한다. 여기서 중국 문제는 제국 중국이 한국에 던지는 국가 존망 위기와 도전을 가리킨다. 윤 정부가 펠로시 사태를 잘 풀었는데도 중국은 8월 9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5개 응당(應當)론'을 들고 나왔다. '독립 자주, 근린 우호, 개방 협력, 상호 내정 불간섭, 다자주의'로 꾸몄지만 사드 철수, 중국 겨냥 경제 동맹 불참, 대만 문제 불개입, 한미 동맹 해체를 요구했다. '상호 내정 불간섭'하자면서 한국 내정에 간섭한다.

    한국 사회의 혐중 정서를 만든 건 중국이다. 2016년 이래 계속된 사드 보복은 한국의 '독립 자주'를 침해하는 국가가 중국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중국 표현대로 '대국 중국이 소국 한국'을 힘으로 길들이려 한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에 익숙한 한국인은 강자의 횡포를 혐오한다. 중국몽이 세계의 악몽으로 귀결되고 지구촌 곳곳에 반중 정서가 비등한 것도 중화 제국의 업보다.

    '수출 대국 한국이 중국과 결별할 수 있는지' 묻는 이들이 있다. 요소수 대란처럼 GDP 대비 수출입 비율이 8할이 넘는 한국이 중국 보복으로 붕괴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경제 공중증(恐中症)은 틀렸다. 국제 분업 체제에서 중국이 한국에 보복하면 중국도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21세기 산업의 쌀' 반도체가 결정적 증거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절대 강자(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D램 72.6%, 낸드플래시 46.4%)인 한국 없이는 중국 IT 전자 산업 전체가 마비된다. 한한령이 관광업과 화장품 등에 머문 배경이다. 중국에 주눅 들 까닭도 없고 중국과 결별할 이유도 없다는 게 한국 국가이성의 목소리다.

    중국의 '5개 응당' 요구는 한국인을 모욕했다. 제국 중국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평등한 주권국가들의 평화 공존'에 입각한 세계 질서를 부정한다. 수정주의 학자들은 1648년 이후에도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며 베스트팔렌 이념을 꼬집는다. 하지만 베스트팔렌 조약이 국제 질서의 보편적 토대임을 부인하면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가 되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의 참극만 남는다. 양차 세계 대전의 폐허 위에 인류가 함께 쌓은 국제연합(UN)은 베스트팔렌 질서의 현대적 성과다. 한국을 6·25전쟁 절멸(絶滅) 위기에서 구한 유엔이야말로 베스트팔렌 이념의 최대 성취라는 국가 철학이 통절하다.

    국권이 민권을 억누르는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이성은 반동적이다. 이와 달리 민권을 국권보다 중시하는 미국과 한국의 변증법적 국가이성은 보편사적 호소력이 있다. 민주주의·법치·인권이 없는 중국이 세계인의 민심을 잃을 때 한국의 한류는 세계를 매혹한다. 중국이 우리를 겁박할 땐 베스트팔렌 질서에 입각해 의연히 대응하면 된다. 오늘의 한국은 약소국이기는커녕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자 매력 국가다. 중국 국가 대계(大計)의 첫걸음은 한국을 동등한 주권국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선진국 시민인 우리는 반중 감정을 넘어서야 한다. 1992년 이래 국익에 투철했던 한·중 수교 30년이 상호 번영을 불렀다. 2022년 이후 정립될 새 한·중 관계 30년도 냉철한 국가이성이 이끌어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중국 앞에 우뚝 선 반만년 역사의 첫 순간이다. 한·중 두 나라가 진정한 선린호혜(善隣互惠) 문턱에 섰다.
    기고자 :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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