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3) 밤길을 더듬어 올라보니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발행일 : 2022.08.26 / 여론/독자 A29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사람에겐 밤눈과 낮눈이 있다. 안구로 빛이 들어오면 망막의 시세포가 발화하는데, 빛의 양이 충분한 주간과 상대적으로 어두운 야간에 주로 쓰이는 세포가 구분된다. 야간시(nocturnal vision)의 특징은 빛이 많지 않아도 대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는 거다.

    어둠이 내리면 작은 명암 차이를 잘 구별해 내고 움직임이나 거리감처럼 꼭 필요한 기능도 최대한 잃지 않도록 밤눈이 작동한다. 낮눈에 비해 세밀하게 보거나 색을 구별하는 능력은 떨어져도 밤눈이 있어서 달빛 아래에서도 걸음을 옮길 수 있다.

    박찬원(78)은 기업에서 40년 가까이 일을 했고, 은퇴 이후에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다. 성과 지표를 적용한다면 최상위 등급을 받을 것처럼, 그는 작업 방식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몸에 밴 성실함으로 밀어붙인다. 하나의 작업적 관심사를 정하면 2년간 100번의 촬영을 진행하고, 책과 전시를 만들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식이다. 큰 기업을 이끄는 역할을 담당했던 작가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양질전환은 종종 예술 활동에도 적용된다.

    하루살이, 나비, 돼지, 말, 젖소 등 곤충과 동물을 소재로 한 작업을 이어오는 동안 그에게 사진은 줄곧 새로운 자신을 경험하고 발견하게 하는 경이로운 도구였다. 돼지우리에서 함께 뒹굴고 죽어가는 명마(名馬)를 끌어안는 강렬한 경험이 모두 사진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처음 해보는 일은 자극적이다.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행동이 그에게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은 줄곧 첫사랑처럼, 상대방보단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 신작 '젖소의 산'에서도 마찬가지다. 검은 소의 등은 산등성이 같다. 굽이굽이 오르면 저 너머엔 뭐가 있을까. 세상은 어둡고 내 앞엔 또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오를 것이다. 화려하게 반짝이지 않아도, 한 발 한 발 더디고 조심스러워도, 괜찮다. 밤을 더듬어 이 길을 다시 나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멋지다.
    기고자 :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100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