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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아, 넌 품위와 긍지를 아는 큰 배우였단다

    박돈규 기자

    발행일 : 2022.08.26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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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강수연 추모… 서울여성영화제서 공로패 전달한 배우 김지미 단독 인터뷰

    "마음이 아파요. (강)수연이는 큰 배우였어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땐 '괴롭다'며 저한테 여러 번 상의를 했어요. 조언하고 위로하면서 잘 견디길 바랐는데…. 오늘(25일) 저녁에 추도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도 가슴이 떨려요."

    25일 밤 개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는 배우 김지미(82)가 후배 강수연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수상자는 지난 5월 고인이 돼 유족이 대신 받았다. 김지미는 이날 오후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공식적인 무대에 서는 것은 2019년 이후 3년 만인데 이런 자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강수연 같은 여배우가 대한민국에 필요한데 너무 일찍 떠나 안타깝다"고 했다.

    김지미는 1957년 열일곱 살에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출연작은 '길소뜸' 등 700여 편에 이른다. 강수연과는 한 시대를 대표한 여배우이자 여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손자, 손녀, 딸 등 가족과 함께 편안히 지냈어요. 코로나 때문에 오랜만에 한국에 왔지요. 지난 5월에 별세 소식을 접하고 너무 놀랐어요. 그땐 꽃만 보내고 이제야 왔네요."

    ―두 분은 어떤 사이였습니까.

    "수연이가 저한테 많이 의지했어요. 아역 때부터 영화를 같이 했거든요.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고, 저는 '인기만 좇으면 배우 생명이 짧다.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긍지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격려하곤 했어요."

    ―강수연은 어떤 배우였습니까.

    "명예를 값싸게 팔아먹고 다니지는 않았어요. 큰 배우라 제가 좋아했지요. 요즘 한국영화를 보면 너무 흥행을 중심으로 돌아가요. 난폭한 영화, 흥미나 끄는 영화가 대부분이잖아요. 옛날에는 교육, 문화, 청소년을 위한 영화가 다양하게 나왔어요."

    ―'기생충''오징어게임'도 보셨나요.

    "다 봤어요. 세계적인 상도 받았으니 저도 인정을 해야겠지요. 그런데 그 작품들의 소재가 너무 어둡고 부정적이에요.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는지 묻자) 글쎄요. 저는 자극적인 영화보다는 서정적인 영화,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를 더 좋아해요."

    ―강수연이 지금 옆에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배우는 배우로서 품위를 지켜야 하고,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하고, 기자는 기자로서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수연아, 너는 그 기준에서 어긋나지 않은 좋은 배우였다. (여성 영화인들에게 조언을 청하자) 끝까지 잘 버텨서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남성 영화인들한테 지지 말고요."

    ―영화인 김지미를 돌아본다면.

    "당당하게 살았지요. 돌아보면 흐뭇하고 행복해요. 단 하나, 내가 그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을 돌보지 못한 미안함이 있어요. 그 빚을 이제야 갚아 나가고 있지요."

    ―출연 계획은 없나요.

    "이 나이에 영화를요? 저는 방송은 안 해요. 드라마는 해본 적이 없어요.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극장에 와서 입장료 내고 즐겨야 하는데, 안방에서 편하게 앉아 있는 분들에게 내 연기를 서비스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대중의 관심이 많아 피곤하셨을 텐데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실까요?

    "배우는 자기 관리가 너무 힘든 직업이에요. 수연이도 그걸 못 한 게 마음 아파요. 다음 생에는 배우 안 하고 평범하게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자식 기르고 행복하게 사는 주부이고 싶습니다. 그게 가장 편안한 삶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청했다. 김지미는 "제가 제일 감사하는 분들은 영화를 사랑해준 팬들"이라며 "그분들이 있어 김지미가 있었고 한국영화가 오늘날까지 왔으니까"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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