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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소금보다 나트륨은 적고
감칠맛과 단맛, 짠맛이
조화로운 천연 조미료

몇 해 전부터 특별한 명절 선물로 '씨간장'이 떠오르고 있다.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둔 요즘, 씨간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리의 장(醬) 중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자랑하는 씨간장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며 덩달아 명절 선물로도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최근 문화재청과 협업해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씨간장에 대한 관심을 배가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다채로운 맛으로 음식에 풍미를 더하는 간장

우리 음식을 논할 때 '장'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K푸드의 높아진 위상을 감안하면 이번 유네스코 등재는 무난히 진행될 것으로 조심스레 전망되고 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간장·고추장·된장 3개 품목의 수출액은 8237만 달러로, 2018년도 6043만9000달러에 비해 약 36%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장에 대한 세계인들의 높아진 관심을 체감할 수 있다.

장 중에서도 특유의 감칠맛을 비롯해 단맛·신맛 등 다채로운 맛으로 음식에 풍미를 더하는 것이 바로 간장이다. 간장은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맛이 특징으로, 단순히 짠맛과는 다른 특별한 맛을 낸다.

간장은 종류도 다양하다. 발효 기간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르고, 용도 또한 달라진다. 발효 기간에 따라 맛과 색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막 담근 새 간장은 햇간장 ▲1~2년 정도 숙성시킨 간장은 청간장 ▲3~4년 된 간장은 중간장 ▲5년 이상 묵힌 간장은 진간장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 색이 짙어지고 풍미가 깊어지기 때문에 미역국 등 맑은 국물 요리에는 햇간장을 쓴다. 반면, 중간장은 잘 달여서 맑게 거른 후 나물·찌개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5년 이상 숙성시켜 진한 진간장은 갈비찜·불고기·조림 등 거무스름한 색이 잘 살아 입맛을 돋우는 요리에 사용된다.

◇간장 맛의 '씨앗' 씨간장

여러 간장 외에 또 하나의 높은 가치를 지닌 간장이 존재한다. 바로 '씨간장'이다. 씨간장은 오래 묵힌 진간장 중에서 가장 맛이 좋은 간장을 골라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것을 말한다. 씨간장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맛의 씨'가 되는 역할을 한다. 색은 진한 흑색이며, 부드럽고 강한 풍미와 단맛, 감칠맛을 낸다. 맛이 뛰어난 씨간장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새로 담근 햇간장을 섞는 겹장의 형식을 거쳐 씨간장에서 느꼈던 맛과 가장 가까운 풍미를 유지한다. 마치 와인이나 위스키 등의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블렌딩(blending·여러 가지 원료를 뒤섞는 것)하는 것처럼 씨간장을 통해 햇간장의 맛을 한층 더 깊어지게 한다. 수분이 날아가 양이 줄어든 만큼 햇간장을 부어 늘 같은 양을 유지하는 조상들의 지혜까지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두장(豆醬) 문화권에 있는 중국과 일본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이면서도 차별화된 우리만의 문화이다.

맛의 씨가 되는 중요한 원료인 만큼 옛날부터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됐다. 오죽하면 '좋은 씨간장은 옹기째 훔쳐 간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우리 선조들은 장맛이 조금 떨어졌다 싶으면 손맛 좋기로 소문난 집의 씨간장을 조금 얻어다가 섞어 먹곤 했다. 한 집안, 나아가 마을 전체의 장맛을 지켜온 비결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집에 손님이 오면 간장을 가장 먼저 대접했다고 한다. 상 위에 올라온 간장을 찍어 먹어 입맛을 돋웠다. 간장이 오늘날의 애피타이저 역할을 한 셈이다. 또한, 그 집의 역사가 담긴 장을 나눠 주는 것은 손님에게 특별한 애정과 정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영양학적으로도 간장에 담긴 효소와 유익균을 나누는 의미가 있었다.

씨간장은 버릴 것이 없는 효자 식품이기도 하다. 씨간장독 아래 가라앉은 소금 결정체를 건져내 여러 번 씻고 말려 사용하면, 일반 소금보다 나트륨은 적고 감칠맛과 단맛, 짠맛이 조화로운 천연 조미료가 된다.

씨간장은 맛뿐 아니라 건강에도 유익하다. 양질의 단백질과 풍부한 지방을 함유하고 있어 탄수화물 중심의 한국 밥상에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을 보충해준다. 스님들은 소화가 잘 안되거나 속이 안 좋을 때 속을 다스리기 위해 천연 소화제 용도로 간장차를 마신다고 한다.

명절을 앞둔 요즘, 씨간장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높은 가치를 지닌 만큼 명절 선물로 손색이 없는 데다 국·탕·조림·무침 등 다양한 명절 음식에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름진 전 등과 씨간장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간장이 어우러지면 최고의 궁합으로 완성된다. 심지어 소화에 도움이 되는 차로도 마실 수 있는 만큼, 자칫 과식하기 쉬운 명절에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씨간장에 대한 오해… '시간'보다 '맛'이 중요

많은 사람이 씨간장에 대해 '단순히 오래된 간장'이라고 오해한다. 대중매체에서도 '몇 대째 이어온 100년 된 씨간장' 등의 문구를 종종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씨간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간장의 종자(種子)'라는 것이다. 씨간장은 다른 간장의 종자가 될 수 있을 만큼 맛있어야 한다. 맛있는 진간장을 골라 옹기에 5년, 10년 동안 잘 숙성시켰다면, 그것 역시 훌륭한 씨간장이 될 수 있다.

100년, 200년 된 간장이 씨간장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씨간장은 마치 선택받은 가정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쯤으로 단정 짓게 된다. 이는 현대인들에게 씨간장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만 두게 할 뿐이다. 장 중에서도 높은 가치를 지닌 씨간장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우리 장 문화에 대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씨간장을 우리 스스로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도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경우 우리 장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우리 자신도 우리 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고자 : 김수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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