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윤희영의 News English] 한국전쟁 참전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발행일 : 2022.08.25 / 여론/독자 A33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오늘은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던(take the first step on the moon)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이 타계한(pass away) 지 10주기 되는 날이다. 달 표면을 걸은 첫 인간이 된 그는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one small step for man),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one giant leap for mankind)"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었다.

    그런데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앞서 18년 전 한국 땅에 먼저 발을 내디뎠다는(set foot on Korean soil)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한국전쟁에 해군 조종사(naval aviator)로 파병돼 1951년 8월 첫 전투에 참가했다(see action for the first time). 그래서 이번 8월은 암스트롱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지 71년째 되는 달이기도 하다.

    그는 첫 임무 후 닷새 만에 북한 지역에서 저고도 폭격 비행을 수행하던(make a low bombing run) 중 대공 포화에 피격돼(be struck by anti-aircraft fire) 낙하산으로 탈출했다가(manage to parachute out) 해병대의 구출 작전으로 무사히 귀환할(make it back to the base safely thanks to the marines' rescue operation) 수 있었다. 이후 암스트롱은 약 1년 가까이 78회 출격 임무를 수행하면서(carry out 78 sorties for almost a full year) 3개의 무공훈장을 받는(earn three medals for bravery) 등 혁혁한 공훈을 세운(achieve brilliant exploits) 뒤 1952년 8월 제대하고 학업에 복귀했다(be discharged and get back to his studies).

    1930년 8월 5일 오하이오주(州)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많아 16세에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다. 1903년 사상 처음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가 같은 주에서 성장하고 사망한 것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해군과 인연은 1949년 시작됐다. 해군 장학금을 받아 퍼듀대학교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하면서(major in aeronautical engineering) 비행 훈련도 시작했다(start with his flight training). 그러던 차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break out) 재학 중 차출돼(be recruited while in college) 참전하게 됐던 것이다.

    귀국 몇 년 후 암스트롱은 NASA(미국항공우주국)의 전신인 항공자문위원회에 들어가 고속 항공기 시험 비행 조종사 겸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았고(build his career), 1962년 마침내 NASA 우주비행사가 됐다. 그리고 7년 뒤인 1969년 7월 20일, 39세 나이에 아폴로 11호 선장으로 동료 우주비행사(colleague astronaut)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와 함께 역사적인 달 착륙에 성공했다.

    갑작스러운 세상의 관심을 버거워했던 그는 NASA 은퇴 후 대학교수 등으로 조용히 지내다가 말년에는(in his latter years) 고향 오하이오주 농장에서 은둔해(withdraw from the world) 살았다. 10년 전인 2012년 심장 수술 후 관상 동맥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die of a coronary complication). 한국전쟁 참전 후 귀국한 지 60년 되는 해였다. 82세였다.
    기고자 :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77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