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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플라자] 귀찮아하지 마세요, 제겐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발행일 : 2022.08.25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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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에 들어가는 치즈 및 유제품은 꼭 빼주세요. 알레르기가 있어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휴대전화 배달 앱에 고정으로 저장해 둔 문구다.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쇼크)'가 있는 나는 매번 외식할 때마다 주방장에게 목숨을 맡긴다. 결코 농담이 아니다.

    7년 전 어느 여름날, 대학 동기들과 피자를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20분쯤 걸었을까, 몸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내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간지러움이 손끝부터 시작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얼른 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를 했다. 이후 잠시 기억이 끊겼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 떨어진 샤워기가 펄떡거리고 있었다. 기어서 욕실을 빠져나와 문 앞에서 쓰러지듯 잠들었고 새벽녘에 깨어났을 때는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어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날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로 몇 번 더 비슷한 일을 겪고 나서야 병원 문을 두드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레르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알레르기는 먹어서 치료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최근 어느 중국집에서 손님이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고 미리 알렸으나 주방장이 깜빡하고 새우가 들어간 음식을 내 손님이 탈 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주방장은 바쁜 시간에 한 그릇만 따로 조리하기 귀찮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해당 기사의 피해자는 그날의 후유증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내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식당 음식에서 치즈를 빼달라는 요구를 하기란 쉽지 않다. 아주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주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도록 전달해야 한다. 거절당한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유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양식당만 피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닭갈비를 파는 한식당에서도, 평범한 중식당에서도, 하다못해 분식집을 가도 치즈가 '공포스럽게' 올라간 떡볶이를 받게 된다. 메뉴판에 성분 표시가 없으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

    종종 내 증세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과 식사하는 일이 생기는데, 보통 유제품을 못 먹는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이 잦다. 나는 가장 극단적 방식으로 설명한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심할 땐 장기가 부어서 응급실에 가야 해요. 그러다 잘못 호흡기가 부어오르면 그냥 죽는 거죠, 뭐." 그제야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나도 성분표만 보고 먹을 수 있는 음식만 골라 편하게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귀찮게 여기는 주인의 눈초리를 받지 않고, 혹시 뭔가 잘못 먹을까 덩달아 긴장하는 친구들의 걱정을 받지 않고, 매번 안전한 메뉴만 골라서 자유롭게 먹고 싶다.

    그래도 5년 전과 비교하면 요즘은 정말로 '살 것 같다'. 새로운 선택지가 많이 생겨났다. 카페라테를 귀리 우유로 바꿔 먹을 수 있게 됐고, 배달 앱에서 검색해 '비건 피자'도 사 먹었다. 물론 아직은 메뉴에 내 취향을 맞추는 수준이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5년 후에는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날 것도 같다.

    더 이상 '그 메뉴엔 치즈가 들어가야 맛있어요'라는 말을 듣지 않고, 굳이 누군가에게 내 메뉴 선택의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식탁을 꿈꾼다. 심각한 알레르기 증세로 괴로워하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시하진 않는지 가끔은 주위를 돌아보면 좋겠다. 부탁드립니다. 귀찮아하지 마세요. 누군가에겐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기고자 :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70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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