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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43) 김정구의 '수박 행상'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발행일 : 2022.08.25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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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독립운동가요를 찾아 중국 옌볜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조선족 어르신이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내게는 익숙한 김정구의 '수박행상'(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1939년)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라디오로 한국 전파를 잡았을 때 들어서 익힌 노래라 하셨다. 긴 세월 먼 거리를 돌아 만난 '수박행상'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 노래는 수박 장수가 익살스럽게 수박을 사라고 외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곡의 종명이 '만요(漫謠)'로 표기되어 있으나 음악적으로는 신민요풍이다. "야, 이거 참 싸구나"라는 말로 시작하는 '수박행상'은 수박을 먹으면 어떤 효능이 있는지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노인네가 잡수시면 젊어지고 처녀총각 잡수시면 사랑이고, 목마를 때 잡수시면 시원하고 출출할 때 잡수시면 배가 부르고, 우락부락 잡수시면 아들 낳고 야금야금 잡수시면 딸을 낳는다"며 절마다 "둥글둥글둥글"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노래의 재미를 추구했다.

    수박은 이미 고려 시대에 들어왔다고 한다. 1920~1930년대 신문에서도 관련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동아일보' 1928년 7월 29일 자에는 수박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아침 일찍 밭에 나가서 익은 것을 골라서 딴 후 칼로 베지 말고 밭 근처에 있는 돌에 때려 깨어 먹으면 물도 많고 신선하며 식전이므로 차기도 해서 비할 데 없이 맛이 있다"고 소개했다. 지금은 범죄이지만 한때 '수박 서리'라는 말은 여름날 어느 시골의 정겨운 풍경과 더불어 떠오르는 단어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여름에 계곡물에 담가두었던 수박을 시원하게 먹던 추억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 기사에서는 수박 젤리를 비롯해 수박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는 한편 수박을 소화제이자 청량제라고 예찬했다.

    광복 이후 '수박 행상'은 3절을 2절로 줄이고 노랫말도 약간 수정해서 '수박 타령'이란 제목으로 다시 불렸다. 1절은 유사하나 '수박 타령'의 2절은 "몸 아플 때 잡수시면 둥글둥글둥글 몸 풀리고 임 그리워 잡수시면 둥글둥글둥글 임이 오네"로 이루어져 있다. 김정구와 마찬가지로 만요에 특기가 있던 김용만도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여러 효능이 있는 수박을 일러 "신이 내린 과일의 왕" 또는 "천사의 음식"이라고 했다 한다. 수박의 꽃말은 '큰 마음'이다. 입추도 말복도 지났다. 아침저녁으로는 조금씩 선선해지는 것이 가을이 멀지 않은 듯하다. 남은 여름에 수박 드시고 큰마음으로 건강하게 마무리하시길. '수박행상' 한 곡 곁들여도 좋으리라.
    기고자 :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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