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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눈빛에 봉준호도 반했다

    김성현 기자

    발행일 : 2022.08.25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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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여름 극장가 접수한 예순의 영국 배우 팀 로스

    예순 넘은 영국 배우가 늦여름 극장가를 조용히 접수했다. 주인공은 팀 로스(61). 출연작인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감독 미아 한센뢰베)에 이어서 31일 '썬다운(감독 미셸 프랑코)'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지난해 칸과 베네치아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예술영화다.

    팀 로스의 영화 이력을 아는 팬이라면 이 배우의 최근 행보에 더욱 놀랄지도 모른다. 그는 피가 흥건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1992년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에서 '미스터 오렌지'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우 스스로도 "'저수지의 개들'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고백했다. 그 뒤에도 '펄프 픽션'부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까지 타란티노의 영화만 5편에 출연했다. 미 드라마 '라이 투 미(Lie to Me)'에서는 상대의 표정과 몸짓만으로 거짓 여부를 꿰뚫어 보는 과학자 역을 맡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 탈출'(2001년)과 '인크레더블 헐크'(2008년)로도 친숙하다.

    보석 가게 강도와 헐크에 맞서는 괴물, 호전적인 유인원 장군까지 악역 전문으로 인식됐던 그는 최근 개봉작들에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썬다운'에서는 여름 휴양지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접하고서도 여권 분실을 핑계로 돌아가지 않는 영국 부호 '닐' 역을 맡았다.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강렬한 태양과 어머니의 죽음, 해변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까지 영화 초반부는 카뮈의 '이방인'을 연상시킨다. 팀 로스 역시 특유의 냉소적 표정과 절제된 대사를 통해서 부조리한 상황을 드러낸다. 흡사 '이방인'의 청년 뫼르소가 노년의 영국 부호로 바뀐 것 같지만, 닐이 감춰둔 사연이 드러나는 후반부에서 '일몰(sundown)'이라는 영화 제목의 의미도 선명하게 부각된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해 꼽았던 최고작 가운데 하나.

    앞서 개봉한 '베르히만 아일랜드'에서는 신작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아내와 함께 스웨덴 포뢰섬을 찾는 영화 감독 '토니' 역을 맡았다. 실제로 이 섬은 스웨덴의 전설적 감독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이 말년까지 머물면서 숱한 걸작을 촬영했던 곳. '영화에 대한 영화'의 성격이 두드러진 이 작품에서 팀 로스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감독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흡사 반항아·불한당 전문 배우가 예술영화의 상징으로 변신한 것 같지만, 실은 팀 로스는 1980년대 게리 올드먼·콜린 퍼스·대니얼 데이루이스 등과 함께 젊은 영국 스타 배우들을 일컫는 '브릿 팩(Brit pack)'으로 불렸다. 그는 40년 연기 인생의 비결에 대해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계획이 내 계획(I have no plan. That's the plan)"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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