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76) 양심이 없는 지성의 전당

    김규나 소설가

    발행일 : 2022.08.24 / 여론/독자 A33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젊은이들은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 배움은 사양길에 들었다. 그뿐인가? 세상이 거꾸로 걷는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여 시궁창에 처넣고, 새들은 날지 못하는 주제에 둥지를 떠난다. 다행히도 나는 그 시절에 윌리엄 수도사 같은 분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배움에의 욕구를 채우고 사물을 바로 보는 감각을 익혔으니, 내가 험로를 헤맬 때도 스승의 교훈이 나를 인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서울대 감사 결과, 교직원 666명의 크고 작은 비리가 적발되었다. 근무지 이탈은 기본, 연구비, 자문비 등을 부당하게 청구했고 허위 거래 내역서를 남발하여 사익을 취했다. 성범죄나 음주 운전 같은 임용 결격 사유를 숨긴 경우도 있다. 4건만 징계, 나머지는 경고, 주의로 끝났다. 그런데도 교수협의회는 지나친 통제라며 반발했다. 올해 국민 세금으로 나가는 서울대 정부 지원금은 5379억원이다.

    젊은 수사 아드소가 스승 윌리엄과 머물게 된 수도원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악마의 짓이라며 공포에 빠져들고 권력을 저울질하는 종교재판관은 고문과 협박으로 얻어낸 거짓 자백으로 수사를 종결하려 한다. 하지만 스승은 타협하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 모든 게 인간의 욕망 때문이었다. 육욕과 권력욕, 그리고 자기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려는 독점욕이 살인의 가장 큰 동기였다.

    언제부턴가 양심의 부재가 성공 조건이 되었다. 범법 사실이 드러나도, 권력과 명망이 있다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내빼거나 말로만 사과하면 끝난다. 수사도 받지 않고 증거는 인멸된다. '너만 그런 것도 아닌데 재수 없었네' 하듯 사회 지도층에 포진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는 서로 위로하고 밀어주고 가려주고 끌어준다. 좋은 학벌이란 어떤 죄라도 덮어줄 든든한 뒷배가 생긴다는 뜻인가.

    아드소는 스승의 가르침을 등불 삼아 평생을 살았고 노년엔 그가 선물한 안경을 쓰고 회고록을 적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배우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평생을 걸어온 발자취, 그 사람의 인생 전부다.
    기고자 : 김규나 소설가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106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