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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NOW] 제로 톱, 인기 톱

    이영빈 기자

    발행일 : 2022.08.24 / 스포츠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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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전북·포항 등 상위팀들, 중앙 공격수 없는 전술

    프로축구 송민규(22·전북 현대)는 지난 2월부터 17경기 동안 골이 없었지만, 최근 4경기에서 3골을 몰아쳤다. 리그 수원FC 원정(1대0 승),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1대3 패)에서 1골씩 넣더니 지난 18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16강 대구FC전에서도 골을 넣어 2대1 승리로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포지션을 바꾼 효과를 봤다. 원래 왼쪽 날개 공격수였던 그는 수원FC전부터 중앙 공격수 자리를 맡았다. 단, 상대 중앙 수비수 쪽에서 골 기회를 엿보는 통상 중앙 공격수와는 달리 미드필더가 뛰는 중원까지 내려와 좌우로 공을 뿌렸다. 그러자 날개 공격수들이 비어 있는 중앙으로 쇄도하면서 공격이 원활해졌고, 송민규에게도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온 덕에 골을 몰아 넣었다. 전북은 송민규가 가운데에서 뛰기 시작한 최근 ACL 16강, 8강전과 리그 2경기에서 3승1패를 거뒀다. 송민규는 "공격수로서 다양한 위치에서 뛰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서 기쁘다"고 했다. 이처럼 중앙 공격수 없이 다른 포지션의 선수가 공격수 역할을 맡는 것을 '제로톱'이라고 한다. 일부에선 이를 '가짜 공격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K리그 '제로톱' 열풍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에서는 '제로톱' 전술을 구사하는 팀이 공교롭게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1위 울산 현대(승점 58)와 2위 전북 현대(승점 49), 3위 포항 스틸러스(승점 44) 등이 때때로 제로톱이라는 변칙 전술을 내세워 승점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제로톱은 2000년대 후반 유럽에서 유행했던 전술이다. 대부분 공격 전술은 골잡이를 공격 진영 중앙에 배치하는데, 제로톱은 골잡이 대신 패스와 발재간이 좋은 선수를 중앙에 둔다. 그리고 이 선수는 적극적으로 골을 노리기보다는 중원에 머무르면서 공을 동료에게 배급하고, 때로는 직접 돌파하면서 공격을 이끈다. 대표적인 제로톱으로는 2000년대 후반 스페인 FC바르셀로나에서 뛰던 리오넬 메시가 있다. 메시는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 아래에서 제로톱으로 뛰면서 각종 우승컵 14개를 들어 올렸다.

    ◇고육지책 제로톱

    K리그 팀들에 제로톱은 사실상 고육지책에 가깝다. 주요 공격 자원이 이탈하거나 부진하면서 유동적으로 내세운 전술인데, 뜻밖에도 선수들의 손발이 잘 맞아떨어졌다.

    전북이 올 시즌 처음으로 제로톱을 내세운 건 중앙 공격수 바로우의 부진 탓이다. 바로우는 무더운 날씨에 계속 풀타임으로 출장하며 체력이 떨어졌고, 이달 초 모친상까지 겪으면서 제 기량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송민규의 활약 덕분에 바로우는 충분히 휴식했고, 지난 22일 일본 비셀 고베와의 ACL 8강전에서 1골 1도움으로 활약했다.

    울산 현대도 비슷했다. 울산은 지난겨울 이동경(살케04), 이동준(헤르타BSC)을 독일로, 오세훈(시미즈)을 일본으로 떠나보내며 공격 자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이에 홍명보 울산 감독은 바코와 아마노 준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을 제로톱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높고 긴 공 대신 짧은 패스로 착실하게 전진하는 공격이 효과를 보이며 시즌 초반부터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울산은 중앙 공격수 레오나르도가 자리 잡은 지금도 때때로 상황에 맞춰 제로톱 카드를 꺼내 든다.

    ◇중앙 미드필더도 최전방으로

    김기동 포항 스틸러스 감독은 '구단주에게 사랑받는 감독'이라고 불린다. 팀 자원에 최적화한 전술과 함께 최소 투자 대비 최고 성적을 거두는 사령탑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포항엔 시즌 초반 선발로 내세울 최전방 공격수가 없었다. 그러자 김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인 이승모를 제로톱으로 올리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승모는 당황스러울 수 있는 자리였는데도 특유의 넓은 시야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선보였고, 포항은 시즌 초반 기대 이상의 성적인 3위에 올랐다. 포항은 지금도 공격형 미드필더 김승대를 제로톱으로 내보내며 울산-전북에 이어 3위 자리를 지킨다. 4위 인천 유나이티드도 골잡이 무고사가 일본으로 향하자 한때 아길라르를 제로톱으로 두기도 했다.

    ◇잘못 쓰면 독이 될 수도

    제로톱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확실한 마무리를 지어줄 골잡이가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골 가뭄에 시달릴 수 있다. 실제로 제로톱 전술 구사 빈도가 높았던 울산 현대는 리그 27경기 중 3골 이상 넣은 건 3경기에 그쳤다. 제로톱 역할을 수행할 패스와 돌파 능력을 동시에 갖춘 선수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선수 층이 두꺼운 팀들만 사용하는 전술이기도 하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사령탑들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낳은 현상"이라며 "팀이 어쩔 수 없이 꺼내든 고육지책이 오히려 팬들의 보는 재미를 한층 높여줬다"고 했다.

    ☞제로톱

    공격 최전방에 특정 공격수 없이 미드필더가 공격수 역할을 맡는 것. 패스를 기다리는 대신 중원이나 측면으로 내려와 공격 전개를 도우며 상대 수비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가짜 공격수'로도 불린다. 2000년대 중반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 프란체스코 토티(AS로마) 등이 제로톱으로 뛰었다.

    [그래픽] 잘나가는 팀의 비밀 '제로 톱'
    기고자 :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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