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500년 쓰인 장마 표현, 기후변화로 수명 다해"

    박상현 기자

    발행일 : 2022.08.24 / 사회 A12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유희동 기상청장 인터뷰

    "더 이상 '장마'로 우리나라 여름철 비를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16세기부터 500년 넘게 쓰인 이 표현도 기후변화 앞에서 이제 생명력을 다한 셈입니다."

    유희동(59) 기상청장은 19일 본지 인터뷰에서 조만간 일반에 공개될 예정인 '장마백서'의 주요 내용을 처음 공개했다. 10년 만에 나오는 이번 장마백서의 핵심은 "장마를 더는 장마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8일 서울에 내린 하루 381.5㎜, 시간당 최대 141.5㎜의 역대급 폭우는 장마철이 끝난 뒤 찾아왔다.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충돌해 생긴 '정체전선'이 비구름을 몰고 와 많은 비를 뿌리는 양상은 장마와 같았다. 하지만 장마는 시기상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 사이에 발생하던 기상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어서 8월 비를 장마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장마가 끝나고도 장마와 맞먹는 폭우가 8월 초순과 하순에 걸쳐 내리는 양상으로 패턴이 변한 것이다.

    유 청장은 "장마가 더는 '일년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때'를 뜻할 수 없다면, 동남아의 우기(雨期)란 표현처럼 우리 여름철을 설명할 더 적확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며 "올가을 기상학회에서 기후변화 시대 우리나라 여름철을 설명할 단어를 찾는 연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했다. 장마란 말 자체가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유 청장은 재작년 4월 기상예보 현장에 첫 도입된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을 탄생시킨 기상 전문가다. KIM이 개발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영국이 만든 수치예보모델을 써왔는데, 예보가 자주 틀려 '오보청'이란 비난을 받았다. 2008년엔 기상청이 6주 연속 주말 비 예보를 틀리면서 미국 유명 예보관 출신인 켄 크로퍼드 오클라호마대 교수에게 '기상선진화추진단장'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나 크로퍼드 교수도 수차례 오보를 낸 뒤 돌아갔다. 그 후 2011년부터 한국형 모델 연구가 시작됐다. 당시 유 청장은 수치예보모델개발과장으로 연구를 주도했다. 2019년까지 8년간의 연구 끝에 KIM이 완성되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9번째로 독자 수치예보모델 기술을 가진 나라가 됐다.

    하지만 '비 예보 정확도'는 여전히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기상청의 비 예보 정확도 지수(CSI)는 지난해 43%에 그쳤다. 유 청장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KIM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3년 전부터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알파웨더'란 AI 개발에 착수한 상태"라면서도 "예보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는 게 솔직한 답변"이라고 했다. "알파고는 사람이 둔 바둑 기보를 보고 학습한 뒤 사람을 앞섰는데, 일기 예보도 과거 데이터가 중요하긴 하지만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날씨를 100% 가깝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유 청장은 "더딘 속도라도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여름철 날씨 예측을 어렵게 하는 북태평양고기압 구조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겠다"면서 "우리나라 주도로 일본·중국 등이 참여하는 '북태평양고기압 국제 연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이날 유 청장은 국장단 회의를 열고 극단적 폭우나 대설이 예상되는 지역 주민들에게 재난문자 형태로 위험을 알려주는 '위치 기반 재난 정보 서비스' 구축을 주문했다. TV를 틀지 않아도 휴대전화를 통해 자신이 있는 지역의 재난 정보가 실시간 제공되는 것이다. 이런 '개인화 재난 예보 시스템'은 전 세계 최초다. "이번 '반지하의 비극'처럼 '날씨 약자들'의 인명 피해를 막는 것이 기상청의 가장 큰 책무"라고 유 청장은 말했다.

    그는 "강남역 침수 때 시간당 100㎜ 이상의 폭우가 내릴 거란 특보를 발효했지만 정작 퇴근길 발이 묶인 직장인 중 '당장 강남 일대를 벗어나라' 같은 도움 되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반응이 많았다"면서 "이런 큰비가 내리기 최소 20분 전 재난 정보를 듣고 대피할 수 있도록 '맞춤형 특보'를 제공해 인명 피해를 예방할 것"이라고 했다.
    기고자 : 박상현 기자
    본문자수 : 196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