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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事一言] 내 마음속 '먼 북소리'

    이진준 뉴미디어 아티스트·KAIST 교수

    발행일 : 2022.08.23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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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줌으로 특강을 했다. 강의를 마칠 때 즈음 학생 한 명이 질문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건가요?" 대학생이 되었으니 좀 더 자유롭게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입시를 갓 통과한 공대 학생들을 위한 예술과 과학의 융합에 관한 특강이었는데, 뜻밖의 질문이다.

    흔히 자유가 많을수록 창의력이 발휘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때론 제약이 있을 때 창의적인 결과가 생기는 것 같다. 피란 와서 어느 다방 구석에 앉아 열심히 담배 싸는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을 떠올려 보자. 이중섭은 은지화 300여 점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여유 있는 생활을 했으면 그렇게 참신한 방식으로 그림 그렸을까. 화가 이응로 역시 결핍이 낳은 독창성을 보여준다. 이응로는 동베를린 사건으로 감금됐을 때 휴지에 간장으로 그림을 그렸다.

    위대한 두 예술가가 처했던 가슴 아픈 제약 같은 것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한계가 있을 때, '내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창의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팬데믹 때문에 대부분의 공연과 전시가 취소됐지만 예술가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어떤 음악가들은 창문을 열어놓고 이웃을 향해 합동 공연을 펼쳤다. 나는 영국에서 긴 봉쇄령에 갇혔을 때 부엌에서 남태평양 바닷속 심연을 표현한 설치작업을 했다. 재료를 구하기 어려울 때에는 각종 쓰레기를 모아 동네 담벼락에 꽃꽂이처럼 설치하고 사진작업으로 발전시켰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길을 물은 학생에게 말하고 싶다. 어느 날 북소리에 이끌려 3년간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여행길에 올랐던 하루키처럼 내 마음속 '먼 북소리'를 따라 용기 있게 걸어가라고. 그 북소리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른다. 내 마음속 북소리의 진원을 절박하게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창의력을 키우는 시작일 것이다. 신나는 자유보다 고독한 결핍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기고자 : 이진준 뉴미디어 아티스트·KAIST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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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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