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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相] 위인전의 타락

    김태훈 논설위원

    발행일 : 2022.08.22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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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만난 알렉산더 대왕은 흠잡을 데 없는 영웅이었다. 성인이 되어 읽은 알렉산더는 사뭇 달랐다. 동방 원정 길에서 자주 취했고 직언하는 장군을 술김에 살해했다. 부왕을 시해한 패륜 의혹도 있다. 위인전은 특성상 인물의 장점만 강조하기 십상이다. 그러다가 자주 왜곡의 함정에 빠진다.

    ▶부풀려졌던 위인전이 퇴출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는 북극 탐험 기록이 훗날 허위로 밝혀지고 이누이트족 여아를 임신시킨 사실이 드러나 위인전 시장에서 사라졌다. 고환암을 이긴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은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들통난 뒤 자서전을 읽은 독자들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위인전은 대개 역사적 평가가 끝난 제왕이나 장군, 예술가를 다룬다.

    ▶전기의 주인공들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요즘 청년들의 선망 대상인 체육인 김연아나 손흥민, 방송인 유재석, 가수 아이유 관련 책자들이 많이 팔리는 이유다. 아무리 그래도 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을 위인전 주인공 삼는 것까지 눈감고 지나치긴 어렵다. 몇 해 전 발간된 한 유력 정치인의 만화 위인전은 '꼭 필요한 거짓말도 못하는 정치인' '원칙을 중시하는 면면 뒤에 감춰진 따뜻함' 등 아부성 내용이어서 "북한 위인전 같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 재임 시절 광복회가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위인전'을 만들었다. 위인전 목록에 김 전 회장 모친 전월선 여사가 포함된 사실이 엊그제 드러났다. 분량이 430쪽으로 김구(290쪽)보다도 두껍고, 김 전 회장이 태어나는 장면도 포함돼 있어 "대놓고 집안 미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루쉰은 "위인이 화석이 되고, 사람들이 그를 위인으로 칭찬하면 그는 꼭두각시가 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월선 여사가 딱 그 신세 같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어머니를 꼭두각시 삼았다고 지적해도 반박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 만화 시리즈엔 김원봉도 포함돼 있다.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6·25 때 인민군으로 대한민국을 없애려 했던 인물이다. 정작 임정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을 제외했다.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도, 나라를 전란에서 구해낸 백선엽 장군도 없다.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인물이 빠진 자리를 우리 청소년이 본받아선 안 될 인물이 차지했다. 위인전의 타락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어떤 위인전을 읽는지 감시라도 해야 할 판이다.

    기고자 : 김태훈 논설위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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