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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사이트] 340톤 바위를 미술관에 옮겨 왔다… 돌덩이는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김영애 '나는 미술관에 간다' 저자

    발행일 : 2022.08.22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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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급부상한 미술 재료가 있다면 단연 돌멩이다. 우고 론디노네가 라스베이거스 사막에 세운 거대하고 화려한 돌탑은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았고, 현재 도쿄 국립신미술관 개관 15주년을 기념하여 열리고 있는 이우환의 대표작도 돌을 사용한다. 원래 자연에 있었던 돌을 예술품이라고 하니 어떻게 저게 예술일까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첫째 오해는 너무 쉽게 작업한다는 것이다. 하나 예술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리는 것이라면 인간의 힘으로 조절할 수 있겠지만, 작품과 딱 맞는 돌을 찾는 것은 운명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우환은 '자연'의 상징으로 돌을, '문명'의 상징으로 돌을 가공하여 만든 철판을 사용한다. 여기에는 동양 대 서양의 의미도 담겨 있다. 따라서 자연과 동양이라는 거대한 의미를 단숨에 전달할 수 있는 돌이어야 하는데, 규격이나 형태를 명확히 규정할 수 없으니 수없이 발품을 팔아야만 한다. 한번은 해외 전시를 위해 현지에서 찾고 찾다가 마침내 마음에 드는 돌을 찾았는데, 그것이 맨 처음에 봤던 돌이라는 것을 안 적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일주일 만에 마음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돌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 일주일 동안 주변 풍경이 익숙해지면서 돌이 마음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작품 속 돌은 작가가 느낀 다양한 깨달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매개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무리 설명을 잘 해준다 한들 직접 그 음식을 먹어본 것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현대 예술가의 돌은 말을 줄이고, 직접 그 맛을 보기를 권하는 작품인 셈이다.

    가장 어마어마한 돌멩이를 보여준 이는 미국의 예술가 마이클 하이저다. 높이 6.5m에 340t의 거대한 돌이 로스앤젤레스 라크마(LACMA) 미술관 뜰에 놓여 있다. 돌이 예술이 될 때 둘째 오해는 돈이 안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그러나 도심에서 170㎞ 떨어진 계곡에서 돌을 옮기는 데는 미술 재료를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 필요했다. 후원금 1000만달러(약 130억원)를 모아, 특수 운반 차량을 제작하여, 도로를 통제하면서 천천히 달려 미술관까지 가는 데 무려 11일이 걸렸다. 22도시를 지날 때마다 신기한 광경을 보기 위해 군중이 모여들었고, 심지어 운반 길을 함께 따라가는 여행자도 있었다. 마치 임금님 행차 같은 과정을 거쳐 2012년 3월 돌이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에는 1000명 이상이 모여 환영했다.

    저 큰 돌을 뭐 하러 미술관까지 옮기느라 돈 쓰고 고생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전적 이벤트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특히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을 갖고 도전하고자 하는 미국 사람들 정서에는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산속에 있을 때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자연의 일부지만, 미술관으로 들어온 돌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소통의 매개체, 다시 말해 예술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누구나 한마디씩 던지는 반응은 이미 내재해 있는 가치관의 반영이다. 후원금을 모으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길목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사회적 제약과 협상도 시대의 생각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돌에 얽힌 과거 이야기도 소환된다. 그러고 보면 태초의 예술은 고인돌을 비롯하여 모두 돌이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거부한 채 다만 3500년 이상을 갈 작품이라는 말을 남겼다. 하루의 일희일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초조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태고 전부터 있었고 또한 우리의 짧은 인생이 끝난 후에도 계속 존재할 거대한 돌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라는 위안과 겸허의 마음을 갖게 한다.

    한편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페노네의 돌은 아주 작다. 한 사람이 가볍게 들어 옮길 수 있을 만한 크기지만 나뭇가지에 걸려있어 누군가 와서 옮겨주거나 바람에 날려 떨어지기 전에는 좀처럼 요지부동이다. 나무는 하는 수 없이 돌을 품고 가장자리로 가지를 뻗으며 성장하게 되는데, 이는 실제로 작가가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다. 숲이 많은 지역에서 자란 작가는 한 나무에 자신이 청동으로 조각한 손을 붙여 놓는데, 나무가 손을 감싼 채 그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삶 속의 어떤 어려움을 스스로 떨쳐낼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나무의 성장까지 막지는 못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돌을 어찌하지 못했던 어린 나무는 어느덧 그 돌을 감싸는 훨씬 더 큰 존재로 성장한다. 죽은 돌을 살아있는 나무의 생명력이 이기는 것이다. 실제 나무와 돌을 옮길 수 없으니 작가는 이 감동을 전하기 위해 모두를 브론즈 조각으로 제작하여 세계 곳곳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데, 아부다비 루브르 미술관 분관, 로마 시내 펜디 사옥 앞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등산길에 놓인 작은 돌탑은 누군가의 마음을 모은 소망의 탑이고, 바닷가에서 주워 온 예쁜 조약돌은 추억의 상징이다. 예술적 가치를 획득한 돌은 보석 못지않은 값비싼 예술 작품이 된다. 사실 귀한 보석도 엄밀히 말하자면 희귀하고 아름다운 돌이 아닌가! 무엇이든 의미를 담는다면 그것은 사물 그 이상의 존재가 된다. 예술도 마케팅 혹은 브랜딩이라고 부르는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사이에 지성과 창의라는 인문학적 과정이 필요하고,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하여 비로소 예술이 된 사물은 그래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얻는다. 표현 그대로 옥석을 가리기 위해 '돌'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소재가 된 셈이다.
    기고자 : 김영애 '나는 미술관에 간다'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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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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