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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반 자살' 아니라 '자녀 살해 후 자살'로 인식 바꿔야

    황영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발행일 : 2022.08.22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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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또 한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 겨우 열 살인 아이는 가장 믿고 의지했을 '부모'에게 목숨을 잃었고, 부모도 그 뒤를 따랐다. 최근 생활고, 처지 비관 등을 이유로 자살을 결심한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녀를 먼저 살해하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동반 자살'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자녀 살해 후 자살' '비속 살해'라는 말이 대체하고 있다. 법원 판결문도 '명백한 살인'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아동 학대 범죄'라고 일관되게 짚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에게 살해당한 아동의 공식 통계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지난 2002년부터 2021년까지 언론 보도를 분석해 파악한 242명이라는 통계가 전부다. '존속 살해'는 국가 통계가 존재하고, 형법상 가중 처벌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반 자살로 포장된 비극이 빈번한 것은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그릇된 인식에 더하여, 부모 없이는 자녀가 제대로 살 수 없으리라는 그릇된 판단과, 홀로 살아갈 자녀의 인생은 극도로 불행하고 힘들 것이라는 확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아이를 돌보고 책임져 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가정 불화, 경제적 문제, 정신 건강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 '아동을 국가가 함께 키우고 있다'는 사회적 신뢰 수준을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선 공공과 민간, 그리고 지역사회가 전략적으로 협력하며 대처하고 있다. 미국에서 시행 중인 가족 살해 사정 프로그램(LAP)은 경찰이 위험성 평가 도구를 사용해 살해당할 위험이 높은 피해자를 식별하고, 이후 가정 폭력 상담 기관과 통화 연결해 상담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또 보호 단체, 경찰, 검찰, 교정 등 전문가들로 구성한 전담팀(DVHRT)을 운영해 고위험군을 식별 조사하고 검토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아동 보호 전문 기관, 가정 위탁 지원 센터, 복지관 등 심층 사례 관리 서비스 기관을 통해 빈곤한 아동 가정을 상시 모니터링하며 지원하고 있다. 또 기초수급 대상 및 차상위 계층 외에도 제도권 밖에 놓인 경제 위기 사각지대 가정을 긴급 지원하는 '리커버리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데에 뼈저린 책임감을 느낀다.

    과거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단기적 개선 방안만 되풀이했던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2013년 10월 울산에서 부모의 지속적 학대를 당해왔던 아홉 살 아동이 갈비뼈 16개가 부러진 채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부터 8년이 흘렀다. 그동안 아이 수백 명이 부모 등 보호자에게 소중한 생명을 잃었는데, 형사처벌을 위한 조사 외 국가 차원의 진상 조사는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포함해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의 접근 방법을 바꿔야 한다. 아동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사회가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세세하게 분석하고 긴 호흡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 조사 보고서에 담긴 개선안을 관련 국가기관이 즉시 이행하게 함으로써 실질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숨진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아이에 대한 책임을 부모에게만 미룰 수 없다. 더 이상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귀중한 생명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그 어떤 이유로 단 한 아이라도 부모 손에 살해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고자 : 황영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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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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