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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단 차력사'… 우직하게 장편 집중하겠다"

    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2.08.22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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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만의 장편 '재수사' 소설가 장강명 인터뷰

    소설가 장강명(47)이 장편소설 '재수사'(은행나무)를 냈다. 2000년 서울 신촌에서 일어난 여대생 살인 사건을 22년 만에 재수사하는 이야기. 2권을 합쳐 무려 200자 원고지 3100장 분량이다. 요즘 일반 책 4권 분량. 경박단소 트렌드의 세상에서 장편에 집중한 이 괴력의 작가는 자신을 농담 삼아 '문단 차력사'라고 표현했다. "책을 쓰며 '이렇게 긴 소설 읽을 사람이 있을까' '요즘은 소설도 2차 판권이 중요한데, 이게 팔릴까'와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다 쓰고 난 다음 일의 우선순위를 정리했어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을 담으려면 긴 분량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장편 작가로서 우직하게 책을 써 나갈 겁니다."

    소설은 '헤비급'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염원을 담았다. "2011년 데뷔해서 중견 작가가 됐으니 그에 걸맞은 묵직한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저도 40대 후반에 들어섰으니, 나중에 어떤 작가로 남을 것인가도 신경 쓰게 되거든요. 더 늦기 전에 그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완성하는 데 4년 가까이 걸렸다. 다작으로 유명한 장강명에게 처음 있는 일. 2018년 경찰 등 인터뷰를 마쳤고, 2019년 쓰기 시작했다. 슬럼프를 크게 겪었다. "초창기처럼 하루에 10~14시간씩 소설을 썼는데 책이 끝나지 않았어요. '내가 재능이 별로 없구나'라는 생각에 슬럼프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한 비결은 '꾸역꾸역 쓰기'였다. 글을 쓰다 보니 '좋아하는 걸 써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기자일 때랑 다르게, 단행본 저술가가 되니까 책이 나와야 제가 본업을 했다는 걸 인정받을 수 있어요. 매년 책을 1권 이상 냈는데, '재수사'를 쓰며 처음으로 한 해를 걸렀어요. 이 책을 마치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제는 매년 꼭 책을 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던졌습니다."

    "나는 22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 …나는 경찰의 용의자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

    소설은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 터너(page turner)다. 오늘날 형사사법체계, 계몽사상 등에 대한 범인의 독백과 경찰의 수사 과정을 번갈아 보여준다. 중간에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쓰며 만든 구성이다. "1600장쯤 썼을 때 소설이 진행이 안 돼 갈아엎었어요. 그 전에는 형사 얘기만 계속 나왔습니다. 인물을 줄이고, 범인 독백으로 시작한다는 구성을 넣었는데 좋았던 것 같아요."

    현대 사회에 대한 장강명의 오랜 고민을 담았다. "우리는 길을 잃은 채 세상이 잘못됐다는 생각만 품고 있어요. 데뷔작 '표백'(2011)을 쓸 땐 저도 세상이 끝난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젠 절망 다음을 상상해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강명은 과거에서 다음 세상의 실마리를 찾는다. 소설 속 살인 시점인 2000년이 '불안'과 '공허'라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가시화된 때라고 본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우리는 추락에 대한 공포를 개인이 감당해야 하며 불안해졌어요. 또, 거대한 것의 일부가 되지 못한 채,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해졌죠." 근본적으로는 대의제 민주주의 등 현대의 기둥이 되고 있는 계몽사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제가 보기에 인간은 쉽지 않거든요. 근데 계몽사상은 인간에게 자유와 교육만 주면 된다고 얇게 이해하는 측면이 있어요. 이 사상의 결함을 찾고, 보완하는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내야 다음 세상을 제대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번 소설은 그 지점에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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