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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의 그들도 얼음 가득 찬 이 술을 마셨다

여름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여름 중에서도 늦여름 책. 이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다음 날은 날씨가 푹푹 쪘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가장 더운 날임에 틀림없었다." 차 안의 왕골 시트에 불이 댕겨질 정도로 뜨거웠다고 말한다. 뭔지 아시는 분?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다.

나는 중학교 때 이 책을 처음 읽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 때는 유명한 첫 문장에 꽂혔다. 모두 너처럼 유리한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명심하라는 말에. 세 번째에는 이 소설,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셔츠를 공중으로 던지며 자랑하는 남자와(웬 방정?), 그걸 보고 아름답다며 흐느끼는 여자를 보며(웬 소란?) 사이코 드라마인가 싶었다. 지금 단계는 이러하다. 나 또한 저들 이상으로 유치하고 이상하다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래도 걸렸다.

이렇게 말한 건 무라카미 하루키였던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그렇다. 좋은 소설은 이런 것이다. 읽는 사람에게 흔적을 남긴다. 상처일 수도 있고, 깨달음일 수도 있고, 소설의 무엇을 따라 하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의 인물처럼 옷을 입거나, 말을 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먹고 마시기. 나는 그래서 늦여름에, 더위에 지칠 대로 지쳤지만 곧 이 여름이 끝날 거라는 작은 희망을 붙들며 버티고 있는 이 여름에 진 리키를 마신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그들이 진 리키를 마시기 때문이다.

이들이 쭉 들이켜는 장면을 보면 진 리키가 마시고 싶어진다. 참을 수 없이. 톰이 얼음으로 가득 차 찰랑거리는 진 리키 네 잔을 쟁반에 받쳐서 방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장면부터 마음에 진 리키가 차오른다. 그렇다. 진 리키는 얼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나는 미식축구 선수였다는 이 꽤나 거들먹거리는 부잣집 아들 톰 뷰캐넌이 경력을 속인 개츠비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데, 이렇게 얼음을 가득 채운 것만은 칭찬해주고 싶다. 최소한 톰은 칵테일이 뭔지, 진 리키가 뭔지는 아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남자든 여자든 술에 대해 잘 아는 분들에게 끌린다. 그게 술이든 뭐든 배울 게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술이라면 더 좋지 않은가 싶고. 그분들 앞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면서 그분들이 풀어놓는 술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여야겠죠?

진 리키는 얼음이다. 그토록 더운 날은 더더욱. 얼음은 곧 녹아 버릴 것이므로 잔뜩 넣어야 한다. 얇게 썬 라임 두 조각이 붙어 있고, 불균질하게 부순 얼음이 빙하처럼 끝까지 차 있게끔 날씬한 톰 콜린스 잔을 가득 채워야 한다. 라임 즙과 진과 탄산수로. 내게 진 리키는 얼음을 마신다고 생각하며 마시는 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임도. 어떤 칵테일 레시피북에서는 진 리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산에 올라가 마시는 차디찬 샘물 다음으로 시원하다며, 여름 공식 음료라고. 대공감!

여름은 좀 그렇지 않은가. 어떤 일이 벌어질 것만 같고, 벌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저질러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여름은 뜨겁다. 사람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열치열이라지만 이 소설은 뜨거운 소설이 아니다. 서늘하게 뜨겁다. 아니, 그보다는 온화하게 뜨겁다고 해야겠지. 나는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와 진 리키를 좋아한다.

이 술이 모두에게 맛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진 리키는 한 입을 마시고서 '정말 맛있어!'라고 할 만한 술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시고, 떫고, 밍밍할 수 있다. 이게 뭐냐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 리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어느 순간 알게 되었는데, 식성이 성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쨍하면서 맑고 산뜻하게 시트러시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성격은 뭐 말 안 해도. 기고자 : 한은형 소설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92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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