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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예산 감축, 역공 조심하라

    손진석 경제부 차장

    발행일 : 2022.08.19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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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간 마크롱이 1만7600개의 병상을 없앴다. 그들은 병원을 죽이고 싶어한다."

    작년 말 프랑스의 한 좌파 정치인이 이런 트윗을 띄웠다. 대통령이 병원을 죽이려 한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공공의료 체계인 프랑스는 2017년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연평균 4400개의 병상을 줄였다. 40만5000개 정도 되던 전국 병상이 4년 사이 4.3% 감소했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좌파 진영은 마크롱을 냉혈한으로 묘사하며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는 정권인 것처럼 거세게 공격했다. 병상을 줄인 건 박수 쳐 줄 일까지는 못 되겠지만 나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프랑스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육박할 정도로 재정 압박이 심각했다. 막대한 나랏빚은 주로 좌파 집권 기간에 생겼고, 마크롱은 망가진 나라 살림을 물려받아 악전고투 중이다. 병상 감축은 재정 절감을 위한 고육지책의 하나다. 또한 의학이 발전하면서 입원을 길게 해야 할 필요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만성적인 의사·간호사 부족으로 놀고 있는 병상도 많았다.

    게다가 마크롱만 병상을 줄인 게 아니다. 최근 16년간 4명의 대통령이 전국 병상의 16%인 7만5000개를 비슷한 속도로 줄였다. 좌파 사회당 소속인 전임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좌파 진영은 마크롱만 병상을 줄여 국민의 건강을 포기한 정권이라는 프레임을 설계했다.

    윤석열 정부가 13년 만에 내년 예산을 감축한다고 한다. 필자는 2017년 이듬해 예산이 428조원이 됐다는 기사를 쓰고 파리에 특파원으로 떠났다. 4년 후 돌아와 보니 올해 예산이 추경을 포함해 679조원에 이르게 됐다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 사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4년 사이 이 정도로 재정 투입을 급격하게 늘리는 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좌파 집권기에 빚 늘리기로 나라가 휘청이면, 우파가 정권을 되찾아 허리띠를 졸라맸다. 우리도 그런 순환기에 들어서는 셈이다.

    염두에 둬야 할 건 예산 감축이 생각보다 큰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의 배급'이 멈출 때 순순히 물러설 사람은 드물다. 저항은 생각보다 거칠고 조직적일 수 있다. 동시에 돈을 주던 예전 위정자에 대한 향수가 배가될 수 있다.

    나랏돈 씀씀이를 줄이는 작업은 불요불급한 분야에 한정해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국민의 안전·건강과 연결된 예산을 손대야 하면 숙고를 거듭해야 한다. 국정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적인 흑색선전이 판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도 누군가 '제2의 광우병 파동'을 위한 불쏘시개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산 절감은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을 건실하게 만든다는 대의에 집중한 나머지 세심하지 않게 접근하면 역공에 부딪혀 허우적댈 수 있다.
    기고자 : 손진석 경제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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