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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2030] 다섯 번의 코로나 검사

    최연진 산업부 기자

    발행일 : 2022.08.19 / 여론/독자 A2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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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유럽에 갔다가 귀국 하루 전 마음속 불안이 터져 나왔다. 신속 항원 검사를 받으려고 찾은 현지 약국에서 그랬다. '양성이면 열흘 동안 입국 금지인데 어쩌지? 체류비만 몇 백만원은 나올 텐데…. 출근은 또 어쩌고?' 지하 1층 쪽방에 마련된 검사실에 들어서자 갑자기 목이 칼칼한 느낌마저 들었다.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던 차, 검사원 책상 위의 검사 키트 대여섯 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 다섯이 모두 어느 한국인 남성의 검사 키트였다. '양성, 양성, 양성, 양성, 그리고 음성.' 희한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긴장은 어느새 사라졌고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상황을 정리해 추측해보자면 이렇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튿날 귀국 편을 타야 하는 한국인 남성은 첫 번째 검사에서 양성이 뜨자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두 번째 검사를 받아봤지만 또 양성.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검사를 단행했다. 네 번째까지 양성이 나왔으니 코로나 확진 가능성이 크지만, 운 좋게 다섯 번째 검사에선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았다. 1층에서 내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자니 다섯 번 검사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이 세상 밝은 표정으로 약국을 떠나고 있었다. 그는 이튿날 '음성' 결과지를 들고 인천행 항공기에 올라탔을 것이다.

    그가 옳지 않은 행동을 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역만리 타국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본 한국인이라면 그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 '코로나에 걸렸으면 귀국하지 마시오'로 요약되는 고국의 방역 수칙을 그대로 따르기엔 홀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즈음 유럽 방문객 사이에선 '음성 잘 뜨는 약국' '검사 대충 해주는 검사소' 정보가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이 역시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 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이해 가능한 일이었다.

    이튿날 공항. 다섯 번째 음성 결과지를 가진 남성을 찾지는 못했다. 대신 대한민국 국적기 체크인 카운터 앞에 늘어선 수백 m 줄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어느 나라 항공사 카운터 앞에도 그런 줄은 없었다. 유독 한국인들만 한 손에 음성 결과지를 면죄부처럼 꼭 부여잡고 줄을 섰다.

    귀국해 방역 당국 관계자에게 이 얘기를 전하자 "확진자가 늘고 있는데 어떻게 방역 수칙을 완화하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문자 그대로라면 그의 말이 맞는다. 확진자가 매주 증가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고, 언제 폭증으로 돌변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숱한 시간과 돈을 쓰고, 음성 결과지를 억지로 받아내고, 이걸 들고 기신기신 귀국하는 게 과연 '진짜 방역'인가. 현재 입국 시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 대부분이 '코로나 종식'을 선언해서 이런 절차를 없앤 것은 아닐 것이다. 방역은 중요하지만 이런 '관성'이 철저한 방역을 의미하는지는 동의하기 어렵다. 당국이 방역을 위한 방역을 고집한다면, 음성을 받아내려고 다섯 번 코를 찌르는 코미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기고자 : 최연진 산업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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