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이한우의 간신열전] (148) 예(禮)와 명(命)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발행일 : 2022.08.18 / 여론/독자 A34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공자는 '논어'에서 서른에 이립(而立)하라고 했고 마흔에 불혹(不惑)하라고 했다. 이립은 압축어인데 복원하면 입기이례이입인이례(立己以禮而立人以禮)이다. 먼저 예로써 자기를 세운 다음에 남도 예로써 세워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군신(君臣) 모두에게 해당되는 덕목이다.

    그래서 공자는, 신하는 임금에게 진례(盡禮), 즉 예를 다해야 하고 임금은 신하에게 예대(禮待), 즉 예로써 대우해야 한다고 했다. 공자에게 예란 넓은 의미에서 사리(事理), 즉 일의 이치다. 그래서 간언을 할 때 지나치게 임금의 잘못을 정면으로 지적해서도 안 되지만 아예 임금의 잘못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진례(盡禮)하는 것이다.

    마흔에 도달해야 할 불혹이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일의 이치가 아닌 것, 즉 비례(非禮)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전히 예(禮)와 연관된 것이다. 공자는 신하가 일을 할 때는 주도면밀해야 한다[敏於事]고 했다. 최근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가 여러 차례 보여준 해프닝이야말로 불민(不敏)함의 전형적 사례다. 그런데도 어물쩍 넘어가는 듯하다. 당 전체가 혹(惑)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쉰 살은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명(命)이란 팔자나 운수가 아니다. 예가 사리(事理)라면 명은 사세(事勢), 즉 일의 형세다. 임금이 내리는 말을 명(命)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의 형세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그러나 모든 임금들이 명을 좌우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내리는 말, 즉 명(命)이 자주 사세에 적중할 때 그 말은 점점 힘을 얻었고 적중하지 못할 때는 그 반대였다. 임금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서 판단해[聽斷] 명을 내리는 자리다. 그러니 누구보다 대통령이야말로 말의 무게를 알았으면 한다. 할 말은 꼭 하되 불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않는 절(切)자 하나라도 새겨주면 좋겠다.
    기고자 :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95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