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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 앞둔 기업들의 '주가 누르기'… 개미들만 서럽다

"부자가 되려면 재벌처럼 생각하세요. 재벌은 주가 신경 안 씁니다. 오직 지분, 증여, 상속에만 신경 써요. 최대주주가 자녀에게 지분 넘겨줄 때가 그 회사 주가가 제일 쌀 때입니다." "지주사는 주가가 올라봐야 상속세만 늘어나기 때문에 최대주주 입장에선 악재예요. 주가 오르길 바라는 소액주주들은 그들 입장에선 불청객, 들러리에 불과하죠."

다시는 국내 주식시장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절연(絶緣) 개미'들이 부쩍 늘었다. 이들이 절연을 다짐하는 것이 단지 투자 수익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이 일부 대주주에게만 유리할 뿐, 소액주주들은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시장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승계를 앞둔 일부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다.

◇뿔난 소액주주 "주주 친화? 승계 친화"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선 재계 서열 7위 한화가 화제다. 2차전지, 수소, 우주, 글로벌 방위산업 등 요즘 잘나가는 사업을 두루 갖고 있으면서도 회사 주가가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한화는 작년 2조927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는데, 현재 시가총액은 이보다도 적은 2조3000억원대다. 투자 지표 중 하나인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6~0.7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시장가치가 회사 순자산가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주주들은 회사 측이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 후 소각 등 주주 친화 정책을 외면하면서 주가를 누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작년 말 LG그룹과 계열분리 작업 중이던 LX그룹의 지주사 LX홀딩스도 주가 누르기 논란에 휩싸였다. LX그룹이 지주사 주가를 떨어뜨려 손쉽게 지분을 늘리려 한다며 소액주주들이 청와대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소송으로 번진 경우도 있다. 동원산업 주주들은 최근 회사 측이 그룹 지주회사 격인 비상장 동원엔터프라이즈와 합병하면서 합병 반대 주주들의 주식 매수가액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했다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애초 합병 비율이 동원엔터프라이즈에 유리하게 정해졌다는 반발이 일자, 회사 측은 합병 비율을 조절하고 합병 반대 주주들의 주식을 사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때 주가를 동원산업 회사 가치보다 낮은, '눌린 가격'으로 정해 부당하다는 게 소송 취지다.

이남우 전 메릴린치 한국 공동대표(현 연세대 교수)는 "기업 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지주회사 제도가 편법 승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면서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주주가 없어 거버넌스 리스크가 없는 금융주만 선호하는 이유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주요 그룹 지주사 주가는 순자산가치보다 평균 50% 이상 낮게 형성돼 있다. 이 지주사들이 알짜 자회사들의 과실은 제대로 얻지 못한 채 주가는 억눌리는 '투자가치 없는 주식'이라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순자산가치 대비 주가 할인율은 두산 66.5%, LG 63.6%, CJ 62.7%, SK 61.5%, 삼성물산 61.2% 등이다. 할인율이 높을수록 주가가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사회 책임 강화하고 상속·증여세율 현실화해야" 목소리도

국내 주요 기업들이 2세·3세 승계를 진행 중이거나 준비하는 단계가 되면서, 주주 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일감 몰아주기,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통행세 받기, 승계에 유리한 합병 비율 산출하기, 인위적 주가 하락을 위해 이익 하향 조정하기 같은 '고전적 수법'을 통해 승계 자금을 마련하거나 승계에 유리한 구조로 주가를 조정하는 행위가 소액주주 이익에는 배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상속·증여세율을 현실에 맞게 낮춰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성부 KCGI 대표는 "대주주의 불법적 행위는 엄격히 규제해야 마땅하지만, 대주주로서는 최고 65%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자녀에게 자본을 이전하는 게 나은 구조"라며 "일반주주의 이익을 저해하는 조세 제도를 손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래픽] 국내 주요 지주사 순자산가지 대비 주가 할인율 기고자 :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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