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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視角] '중'을 '등'으로 누가 바꿨나

    표태준 사회부 기자

    발행일 : 2022.08.17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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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훈 법무장관이 '검수완박법'에 대비한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자 검사들 사이에선 오히려 볼멘소리가 나온다. '초강력 시행령'으로 검수완박법을 완전히 무력화하길 원했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한 장관이 민주당에 한 수 접어줬다"는 것이다.

    시행령 개정안을 통한 검수완박법 무력화 가능성은 사실 입법 당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4월 당시 검찰청법 개정안 원안에는 검찰 수사 범위를 '부패·경제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견을 수용해 최종안에서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수정했다. '중'을 '등'으로 바꿔 정부가 시행령(대통령령)으로 구체적인 수사 범위를 정할 여지를 남겨준 셈이다. 당시 '검수완박'에 강경하게 반대하던 검사들은 "차라리 법이 통과되는 게 낫다"고까지 했다. '등'의 의미를 넓게 해석해 수사 범위를 과거처럼 돌려놓는 '초강력 시행령'으로 맞불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당도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수완박'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당시 민주당 내 강경파 '처럼회' 소속 의원들은 우려를 쏟아냈다. 이수진 의원은 "무엇 '중'이라고 하면 무엇의 범위 안에서 해야 한다. 반면, 무엇 '등'이라고 하면 무엇 말고도 다른 것도 정할 수 있게 된다"고 수정안을 비판했다. 박주민 의원은 "(등은) 마치 6대 범죄가 아니라 7대 범죄, 8대 범죄, 9대 범죄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어 '중'으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중'을 '등'으로 바꾼 건 훗날 집권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른다.

    법무부는 이번 시행령으로 수사 범위를 '9대 범죄'로 늘리는 따위의 초강수를 두지는 않았다. 나름 현실적 타협안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 11일 한 장관은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며 "(민주당) 입법 과정을 감안해 그 취지를 최대한 살렸다"는 말을 4차례 반복했다. 그는 검수완박법이 시행되면 사라지는 4대 범죄(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 직권남용 같은 일부 죄목을 부패·경제범죄에 포함시키면서 문재인 정부 때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이나 '유엔 부패방지협약'에 근거한 내용이라 호소했다. 문재인 정부 때 국민권익위원회도 직권남용을 '부패범죄'로 분류했다.

    민주당도 개정안을 받아보고 속으론 안도했을 것 같다. 검수완박법의 완전 무력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시행령 쿠데타" "검찰 '밥그릇'만 챙긴다" 등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이 스스로 '중'을 '등'으로 바꿨고, 당시에 이미 예견했던 일을 지금 와서 마치 몰라서 당한 것처럼 다시 정쟁 소재로 삼는 게 한심하다.
    기고자 : 표태준 사회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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