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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고수 사칭 사기꾼 판쳐… 당국은 ＂수사 대상 아니다＂

"안녕하세요. 김영익 교수입니다. 8월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개인 투자자인 A씨가 지난 10일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주식시장의 위기를 정확히 전망해 '한국의 닥터 둠'으로 불리는 증시 전문가다. A씨는 일면식도 없는 전문가가 먼저 말을 걸어온 게 의아하기는 했지만, 김 교수 모습이 담긴 프로필 사진을 쓰고 있어 큰 의심 없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특정 주식 종목을 노골적으로 추천하는 것을 보고 수상한 느낌이 들어 대화를 중단했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난 5일 비슷한 경험을 했다. 평소 친분이 없는 김영익 교수로부터 페이스북 친구 요청을 받고 '수락' 버튼을 눌렀는데, 상대방이 메신저로 "안녕하세요. 혹시 제 팬이신가요?"라고 대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는 사칭 계정으로 의심하고 곧장 계정을 차단했다.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투자 고수'를 사칭한 SNS(소셜미디어) 계정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김영익 교수처럼 TV나 경제 유튜브 등에 자주 출연하는 유명 경제 전문가 명의의 카카오톡,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뒤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 상담을 해주겠다고 접근하는 패턴이다. 상담을 하면 특정 주식을 사고 팔도록 권유하고, 불법 주식 리딩방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치는 투자 전문가 사칭 계정

경제지표를 알기 쉽게 설명해 '염블리'로 불리는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도 가짜 계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카카오톡에는 '염승환'이라는 익명 상담 채널(오픈 채팅방)이 14개나 된다. '노후 설계' 전문가로 유명한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를 사칭한 계정은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를 보내 '1000% 이상 수익률 보장'을 미끼로 내걸고 특정 주식을 추천하고 있다.

김영익 교수는 1년째 사칭 계정들과 숨바꼭질하듯 씨름하고 있다. 그가 찾아낸 사칭 계정만 20개가 넘는다. 월 평균 6개 가량의 사칭 계정을 확인해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 삭제를 요청하지만, 자고 나면 또 생기는 실정이다. 지금도 김 교수 이름과 사진을 건 카카오톡 상담 채널이 5개, 페이스북 계정이 7개나 된다. 김 교수의 진짜 SNS 계정에 있는 사진이나 영상, 언론 기사 등을 똑같이 올려놓는 사칭 계정도 많다. 가뜩이나 주식시장이 좋지 않은 가운데, 투자 고수로 둔갑한 가짜 계정의 꼬임에 속아 넘어가 주식을 매매하는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경찰에 사칭 계정 신고해도 헛수고… "피해 발생해야 수사 가능"

문제는 명의를 도용당한 전문가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답이 없다는 것이다. 김영익 교수는 두 차례나 경찰에 "사칭 계정 운영자를 잡아달라"고 신고했지만 "(투자) 피해자가 있어야 수사할 수 있다"는 답변만 들었다. 정보를 대가로 돈을 요구하거나 주식 시세를 조작하는 등의 피해가 뻔히 예상되지만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애꿎은 피해자가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했다. 강창희 대표도 지난 4월 경찰에 사칭 계정을 신고했으나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증권 업계에서는 "저런 사칭 계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사 신뢰에 직접적 타격을 주는데 처벌이 불가능하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률 전문가들은 사칭 계정을 사전에 수사할 법적 근거가 있다고 말한다. 한 변호사는 "실재하는 투자 전문가에 대한 명예훼손죄나 사기 미수죄 등으로 처벌할 여지가 있다"며 "일선 경찰관들이 업무 부담 때문에 사칭 피해가 나타나기 전에는 사건 접수를 기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수사 가능 여부는 실제 케이스에 따라 달라진다"며 "일선 경찰서보다는 경찰 사이버범죄 신고 사이트에 사건을 제보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사칭 계정 등이 운영하는 불법 주식 리딩방 피해는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 주식 리딩방 등 유사투자자문업 피해 민원은 3442건으로 1년 만에 97.4%나 증가했다.

[그래픽]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유사투자자문업(주식 리딩방) 민원 접수 기고자 :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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