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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이 만난 사람] 국내 기후변화 연구의 산증인 권원태 전 APEC기후센터 원장

    박상현 사회정책부 기자

    발행일 : 2022.08.15 / 여론/독자 A2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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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남부는 이미 아열대 기후… 하루 381㎜ 강우, 스콜까지 기승… 눈앞의 호우 방재 대책만으론 한계… 정밀한 기후변화 적응모델 짜야"

    수마(水魔)가 덮치기 전 '경고문'은 이미 발송돼 있었다. 8일 서울 동작구에 하루 동안 내린 비는 381.5㎜. 서울에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5년 만에 최고치였다.

    이보다 앞선 지난 6월 기상청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기후센터(APCC)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100년 재현 빈도 극한 강수량'(100년에 한 번 내릴 가장 많은 비)이 2021~2040년 구간에 최대 492.7㎜를 기록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전 구간 최대량(318.4㎜)보다 54% 늘어난 수치다. 두 달 전 날아온 경고문과 일치하는 양의 폭우가 서울에 내린 것이다.

    경고문에 이어 '수해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8일부터 시작된 집중호우로 14명이 사망했고 4명이 실종됐다. 이재민 1901명 등 7480명이 집을 떠나 대피했고, 시설 피해는 공공·사유를 합쳐 4897건 발생했다. 문제는 기후변화 여파로 앞으로 이런 집중호우가 더 늘어날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국립기상연구소(현 국립기상과학원)에서 2004년 국내 첫 '한반도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만든 권원태(67) 전 APCC 원장은 13일 본지 인터뷰에서 "집중호우, 폭염, 한파 등 극단적 날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고, 나아가 한반도 대부분이 온대기후에서 아열대기후로 변하며, '뎅기열' 같은 동남아 풍토병이 번지는 등 질병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며 "탄소중립은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도 아직 먼 미래로 생각하고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온에 놓인 얼음 조각 같은 운명"

    ―이번 폭우를 기후변화로 해석하기는 아직 무리라는 말이 있다.

    "집중호우는 우리나라만 겪은 일이 아니다. 북미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인 미국 데스밸리에서 지난 5일 37.1㎜의 비가 단 3시간 만에 쏟아졌다. 데스밸리의 8월 평균 강수량(2.79㎜)의 13배 수준 비였다. 작년 7월 14~15일 이틀간 독일 쾰른에선 7월 평균(87㎜)의 두 배인 154㎜, 라이퍼샤이트에선 9시간 동안 207㎜의 집중호우가 내리는 등 100년 만의 폭우로 독일 전역에 13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폭우가 아니더라도 건조도가 심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지난 10년간 매년 크고 작은 산불·들불이 발생했다. 기후변화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사상 최악의 폭우가 발생한 원인은 뭔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海水) 온도 상승이 결정적이다. 바닷물이 뜨거워지면 증발량이 많아지고, 대기 중 수증기가 늘어난다. 통상 온도가 1도 올라가면 수증기가 7% 늘어난다. 현재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1.1도가 올랐고, 2040년까지 0.4도가 더 올라 '마지노선'인 1.5도 상승은 피할 수 없다. 이번 수도권 집중호우는 서태평양에 몰린 많은 수증기가 우리나라로 밀려 들어오며 규모를 키웠는데, 여름철 평균 21도 안팎인 서해의 수온이 올해 27도까지 올라가며 수증기를 약화시키지 못했다."

    탄소중립 돼도 해수면 40㎝ 올라가

    ―해수 온도를 떨어뜨릴 순 없나.

    "어렵다. 온난화하면 흔히 공기를 생각하는데 문제는 오히려 물이다. 예컨대 사막에선 일교차가 40~50도에 달할 정도로 공기의 온도는 쉽게 오르내린다. 반면 물은 끓이는 데에도, 식히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바다는 '지구의 온돌'과 같아서 해수 온도를 빠르게 떨어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에 온난화로 덥혀진 공기가 바닷속으로 계속 흡수되고, 수온은 점점 올라간다.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수온이 2도 상승한 상태에서,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 같은 태풍이 발생했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시뮬레이션해보니 강수량이 20% 가까이 늘어났다. 바닷물이 뜨거울수록 재해 규모도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해수면도 80년 내 최소 40㎝ 상승한다고 한다.

    "온난화로 만년설이 사라진다. 이런 식으로 육지에 봉인됐던 물이 흘러 내려가 결국 바다로 향하고 해수면을 높인다. 인간이 현재까지 배출한 온실가스의 결과로만 2100년까지 해수면이 40㎝ 올라간다. 2050년 탄소중립이 돼도 이 결과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실온에 놓인 얼음과 같은 조건에 처해 있다.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녹아내리게 돼 있다. 더 이상 해빙되지 않도록 막는 게 우리 생존과도 직결된다."

    ―해수면이 높아지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집중호우 때 육지의 홍수 피해가 커진다. 이미 바다 수위가 높으니 강물이 바다 쪽으로 흘러나가지 못해 배수 문제가 생긴다. 한강도 집중호우 때 바다가 만조인지 간조인지가 중요하다. 만조라 바닷물이 높아지면 강물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느려진다. 앞으로 바닷물이 애초부터 높아져 있게 되면 늘 만조에 처해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는 셈이다. 또 태풍이 발생할 때 바다로부터 더 많은 양의 수증기가 공급돼 비구름의 덩치를 키울 수 있다. 폭우와 강풍에 찢기고, 하천과 강이 범람하는 말 그대로 물난리가 자주 나타날 수 있다."

    동남아 풍토병 국내로 번질 가능성 커

    ―우리나라 여름철은 이미 동남아 같다.

    "작년 8월 발표된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가 현 수준으로 배출될 경우 2080~2100년 구간에 여름은 최대 6개월, 겨울은 1개월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 우리나라 남부 지방은 이미 온대기후가 아니라 아열대기후에 가깝다. 일 평균기온이 5도 이하면 겨울, 20도 이상이면 여름이라 정의할 때 부산·제주 등에선 사실상 겨울이 사라졌다.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서 나타나는 순간적 국지성 호우인 '스콜(squall)'과 닮은 '한국형 스콜'이 나타났다는 기상청 발표가 2011년이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한반도 전역이 아열대기후로 변하나.

    "그렇다. 더 큰 문제는 온도나 습도보다도 '뎅기열' 등 동남아 풍토병에 대한 대비가 없는 상황에서 질병 이슈로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뎅기열을 일으키는 '베트남 흰줄숲모기'의 우리나라 서식이 처음 확인된 게 2013년 제주도였다. 당시 동남아 관광객과 함께 제주공항으로 들어와 살아남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달리 말해 우리나라가 아열대 곤충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됐다는 뜻이다. 뎅기열뿐 아니라 치사율이 높은 다른 아열대성 질병이 확산할 수도 있다. 대비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얼마나 더 더워지나.

    "탄소감축이 전혀 없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때 2080~2100년 구간에 '서울 낮 최고기온이 45도까지 치솟았다'는 예보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습도도 높아 '찜통 더위' '한증막 더위'로는 설명이 부족한 날씨가 찾아올 것이다. 습도가 낮은 일부 유럽 지역은 이미 기록적 폭염에 시름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작년 8월 낮 최고기온이 사상 최고치인 47.4도를 기록했고, 올해도 45.7도까지 올랐다."

    탄소감축 머뭇거릴 시간 없다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이미 '확정된 미래'가 있다. 대표적으로 2100년까지 해수면은 40㎝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한강 수위도 무조건 오른다는 뜻이다. 이번 수도권 집중호우 때 한강공원 일대가 모두 잠겼다. 만약 한강 둔치를 남겨두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도시를 가꿀 때 이런 확정된 미래를 염두에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는 에펠탑 크기 해일 방벽 2개가 설치돼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 건축물이면서 해일뿐 아니라 강이 범람하려 할 때 펼쳐 쓰는 방어벽 역할도 한다. 이런 준비 덕에 앞으로 해수면이 올라가도 로테르담에선 수해로 인한 인명 피해를 걱정할 일이 없다."

    ―지역별 대비책도 달라야 할 텐데.

    "올 여름철만 봐도 우리나라 중부지방은 물폭탄, 남부 지방은 가뭄에 시달렸다. 이런 현상이 왜 발생했는지 진단보다는 수해·가뭄 등 당장 발등에 떨어진 문제만 해결하는 데 급급했다. 미국에선 1990년 제정한 범세계변화연구법에 따라 백악관을 포함한 13개 부처가 참여하는 '국가기후평가'(NCA)를 진행 중이다. 가장 최근 발간된 2018년 4차 보고서 2권에선 '미국의 영향, 위험, 적응'이란 제목으로 기후변화 시대를 맞은 미국의 현재를 분석하고 어떻게 미래를 설계할지 고민했다. 미국 50개 주(州)에선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각 주의 사정에 맞게 기후변화 시대를 준비 중이다. 우리도 이런 기후변화 적응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

    ―탄소중립 정책조차 지지부진하다.

    "기후변화는커녕 우리 정부는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구체적 달성 방안조차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당장 생색낼 수 없다 보니 정치권에선 기후변화 이슈가 찬밥 신세다. 탄소중립은 미래 세대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모두가 탄소 감축에 열 올려야 한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권원태

    국립기상연구소(현 국립기상과학원)에서 국내 첫 기후변화 연구를 추진한 기상 전문가. 국립기상연구소 소장, 한국기후변화학회 회장,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후센터 원장을 역임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제 4·5·6차 보고서에 주 저자로 참여해 2007년 노벨평화상 기여인증서를 받았다. 현재 기후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위험 평가와 국제적 대책 마련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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