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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LIVE] 착한 거 맞습니까

    박은주 에디터·에버그린콘텐츠부장

    발행일 : 2022.08.13 / 여론/독자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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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선사시대로 느껴지는 과거, 여성을 훑어보며 '몸매가 착하다' 했었다. 남자 눈에 보기 좋으면 착한 거였다. 10여 년 전에는 한 종편에서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식당을 '착한 식당'이라 극찬하고, 명패도 붙여줬다. '아름다운 가게' 설립자였던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는 '착한'이란 말을 애용했다. 가격을 저렴하게 받는 자영업자를 선정해 '착한 가게'라 발표했다. 이후 '착한 결제' '착한 임대료' 같은 용어와 정책이 쏟아졌다.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뜻이다. 곱다, 바르다, 상냥하다는 또 뭔가. 언중(言衆)의 마음에 따라 이리저리 쓰인다. 기준이 없다. 이걸 명문화하거나 제도로 만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김치찌개 한 그릇에 3000원 받는 식당을 '착한 식당'이라고 명명하면, 만원 받는 식당은 나쁜 식당이 된다. '착한 임대료'에 동참하지 않는 건물주는 가혹한 자본가다. 건물주보다 부자 세입자가 있다는 사실, 그런 건 상관없다. 그냥, 무조건, 닥치고 착해야 하는 거다. 이 형용사는 도덕성을 재는 잣대이자, 상대를 베는 칼날이 됐다. 의식 있는 이들이 '착함의 이중성'에 의심을 품을 때쯤, 이 업계에 새 단어가 추가됐다.

    "국회의장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가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던 방송인 김제동씨가 지자체 초청 강연에서 2000만원 넘는 강연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었다. 지명도에 비해 과도하지 않다는 옹호론과 위선자라는 비판이 엇갈렸다. 김제동 팬클럽은 "사회적으로 많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김제동이기에"라며 지지 성명을 냈다. '선한 영향력'은 최고의 마케팅 용어로 자리 잡았다. 수상 소감으로 '선한 영향력'을 말한 예능인 박나래, 식당 컨설팅 TV 프로에 출연한 외식업 사업가 백종원, 기부를 많이 한 개그맨 유재석, MZ 세대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그룹 BTS…. 대개 연예인에게 '선한 영향력'이란 표현이 붙는다. '착한 가게'에 이어 '선한 영향력'도 각종 인증, 시상 사업으로 발전했다.

    주로 목사 설교에 등장하던 말이었다. 성경에는 '선한 행실' '선한 목자'는 있어도 '선한 영향력'이라는 표현은 없다고 한다. 시작은 미지이나 끝은 창대하다. CJ ENM이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 제목은 심지어 '2021 ESG 리포트: 콘텐츠와 커머스, 선한 영향력의 시작'이었다. E(환경) S(사회) G(지배구조)는 요즘 '선한 영향력'과 맞물려 가장 잘 팔리는 용어다.

    중력에 선악과 시비가 없듯, 영향력도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의도는 다양한 결과(consequences)를 낳을 뿐이다. '곰팡이가 핀 손님 컵을 닦다 토할 뻔했다'는 카페 종업원의 사연이 화제가 됐다. '착한 소비'를 위해 종이컵을 퇴출한 매장이 늘면서 알바생이 남의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세척 중 다른 오염이라도 일어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온실가스를 더 발생시킨다는 사실도 '착한 소비' 광풍 앞에선 의미가 없다.

    이 개념은 이제 신흥 종교급이다. 자본주의 모순을 혁파한다는 선한 영향력, 착한 자본주의, ESG가 '배운 사기꾼'이 애용하는 단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형용사는 부패하거나 휘발된다. 그래도 상당수 대중은 여전히 진보의 형용사, 추상명사 구호에 마음이 흔들린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과거 신당 간사였던 하토야마 총리에게 했다는 말, 참고할 만해 보인다. "정치는, 아름답다거나 반짝반짝 빛난다는 형용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로 하는 것이다."
    기고자 : 박은주 에디터·에버그린콘텐츠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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