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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우유의 역사

    곽아람 기자

    발행일 : 2022.08.13 / Books A1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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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쿨란스키 지음김정희 옮김|와이즈맵|472쪽|1만9000원

    "젖비린내 나는 놈들!"이라는 욕설은 고대 로마에서도 유효했다. 현재와 달리 '어리고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무식하고 미개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당시 신선한 우유는 농장에서만 마실 수 있었기 때문에 농부들이나 마시는 하층민 음식으로 인식됐다. 로마인들은 우유를 지나치게 먹는 것을 미개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우유는 기온에 민감한지라 남유럽보다 북유럽에서 보존 기간이 훨씬 길었고, 북유럽 사람들이 우유를 훨씬 많이 소비했다. 로마를 비롯한 고대 남부 유럽에서는 유제품을 많이 먹는 것이 북부인들의 본성이 야만적인 증거라며 그들을 경멸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점령한 브리튼섬에서 북부인들이 우유와 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는지 보고 경악했다.

    인류는 포유류 중 유일하게 어른이 되어서도 젖을 먹는 동물. 젖을 소화시키는 호르몬인 락타아제는 아기가 자라면서 더 이상 몸에서 분비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가축의 젖을 마시기 시작한 인간은 평생 락타아제를 분비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1997년 출간한 '대구(cod)'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저자는 이번 책에서 지난 1만년간 이루어진 우유 공방을 다룬다.

    우리가 우유를 일상적으로 마시게 된 것은 불과 몇 세기밖에 되지 않았다. 우유는 오랫동안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상징하는 '신(神)의 음료'와 생명을 위협하는 '하얀 독약' 둘 사이에 있는 논쟁적 음료였다. 냉장 시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시절엔 부패한 우유가 인간의 목숨을 앗는 경우가 잦았기에 종종 '죽음을 부르는 음료'로 여겨졌다.

    우유 산업의 발달은 산업혁명과 궤를 같이한다. 여성들이 가정을 벗어나 일터로 향하면서 인공 수유 관행이 보편화됐다. 유아나 어린이들도 우유를 마시게 됐지만 여전히 우유는 '하얀 독약'에 더 가까웠다. 뉴욕, 시카고,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 많은 사람이 우유 때문에 죽었다. 1840년대 맨해튼에서 출생한 아기들의 거의 절반이 영아 때 사망했다. 금주운동가 로버트 밀햄 하틀리는 원인을 '구정물 우유(swill milk)'에서 찾았다. 양조장에 붙은 축사에서 오물에 뒤덮인 채 맥주 찌꺼기를 먹고 자란 소들이 영양가가 형편없고 비위생적인 우유를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1855년 뉴욕의 70만 시민이 우유에 연간 약 600만달러를 지출했는데 그 액수의 3분의 2 이상이 '구정물 우유'에 쓰였다. 게다가 소는 결핵에 잘 걸렸는데, 결핵에 걸린 소에게서 짠 젖을 마실 경우, 사람도 결핵에 걸릴 수 있었다.

    1864년 루이 파스퇴르가 저온살균법을 개발했지만 우유 산업에 도입되기까지는 난항을 겪었다. 뉴욕의 높은 영아 사망률을 우려한 백화점 사업가 나단 슈트라우스는 뉴욕 곳곳에 저렴한 가격에 살균 우유를 파는 우유 배급소를 세웠다. 그의 주장에 따라 뉴욕의 한 보육원에서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 둔 채 우유만 저온살균했더니 아동 사망률이 42%에서 28%로 감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은 저온살균 우유가 맛이 없다며 싫어했고, 농부들은 저온살균 기계가 너무 비싸다고 불평했다. 일부 의사는 우유를 저온살균하면 영양가를 잃는다고 주장했다. 결국 저온살균을 의무화하고 생우유를 불법화하는 방안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1907년 슈트라우스가 이끄는 저온살균 지지자들이 뉴욕시에서 생우유 판매를 금지하는 조례안을 상정했다. 낙농업자들은 반대했고 결국 조례안은 부결됐다. '밀크 퀘스천(milk question)'이라 불린 이 이슈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관심을 끌었다. 루스벨트의 지시하에 이 문제를 연구한 미국 공중보건국은 생우유는 위험하고 저온살균 공법이 우유의 맛이나 성분을 바꾸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1912년 뉴욕에선 저온살균하지 않은 우유를 판매하는 것이 불법이 됐다.

    우유에서 세상이 만들어졌다 믿는 힌두교 창조 신화, 치즈 및 버터 제조법, 피델 카스트로를 비롯해 아이스크림을 사랑했던 역사적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까지 '우유의 모든 것'을 충실하게 전하는 책. 푸딩 및 이유식 등 우유를 이용한 요리법 126가지도 곁들였다. 두껍지만 큰 부담 없이 슬슬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책장을 덮을 때쯤엔 시원한 우유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어질 것이다. 원제 M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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