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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벽돌책] 재난, 그 이후

    장강명 소설가

    발행일 : 2022.08.13 / Books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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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 한가운데… 정의란 무엇인가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덮쳤다. 저지대인 뉴올리언스 지역이 물에 잠기고, 한 병원이 5일간 고립된다. 대피하지 못한 환자들을 돌보느라 의사와 간호사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화장실 변기에서 오물이 넘쳤고 대소변 냄새가 병원에 가득했다. 건물 내 기온은 43도까지 올라갔다.

    밖에서는 총소리가 들렸다. 폭도로 변한 사람들이 병원을 노리는 듯했다. 비상 발전기가 고장 났고, 중환자용 생명 유지 장치가 멈췄다. 구조 헬리콥터는 너무 뜸하게 왔고, 아주 적은 인원만 탑승할 수 있었다. 게다가 헬리콥터의 목적지인 대피소에도 환자를 돌볼 장비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절망 속에서 의료진은 무서운 의문에 사로잡힌다. 위중한 환자들이 과연 여기서 살아날 수 있을까.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환자들에게 자원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중환자들을 이런 고통 속에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가. 피부가 다 벗겨져 신음하는 환자를 억지로 붙잡는 일이 고문과 뭐가 다른가.

    720쪽에 이르는 셰리 핑크의 르포 '재난, 그 이후'(알에이치코리아) 전반부는 이렇게 의료진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후반부는 이 병원에서 벌어진 집단 안락사 사건을 조사하는 수사관들에게 주로 초점을 맞춘다. 갑작스러운 시점 변경에, 그리고 두 관점이 모두 설득력 있음에 독자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의료 윤리란, 정의란 무엇인가.

    의사이자 기자인 저자는 메모리얼 병원에서 벌어진 참사를 다룬 심층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수상 뒤에도 저자는 취재를 멈추지 않았고, 관계자 수백 명을 500번 이상 인터뷰했다. 책은 집필 계획만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고, 한국 출판사도 미국에서 책이 나오기 전에 출간 계약을 했다. 결과물은 두 말이 필요 없는 걸작이다.

    무게중심은 윤리적 딜레마에 실려 있지만, 재난 대비 시스템과 여론 몰이에 대해서도 고민할 거리를 충분히 던져준다. 저자도 자기 홈페이지에서 관련 토론 공간을 운영한다. 메모리얼 병원의 비극은 근본적으로 미국 정부의 실패에서 기인했다. 지금 한국의 재난 대비 시스템은 어떤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고자 : 장강명 소설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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