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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알고 있다는 착각

    윤상진 기자

    발행일 : 2022.08.13 / Books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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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리언 테트 지음 |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344쪽 | 1만7800원

    2020년 9월, 미국 최대 규모 은행 JP모건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데도 직원들을 사무실로 복귀시켰다. 감염 확산을 막으려 재택 근무 체제를 도입한 지 6개월 만이었다. 미국 금융가 월스트리트의 회사 대부분이 원격 근무를 유지하고 있던 상황. JP모건은 왜 앞장서 직원들을 회사로 불러들였을까. 디지털 기술이 금융계에 도입되면서 '이론상' 대부분의 금융 업무는 사무실 밖에서도 처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JP모건의 결정 뒤엔 직원들의 업무 성과나 만족도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가?"라는 물음이 바로 그것. 복잡한 수학을 기반으로 짜인 금융 모형보다 직원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바로 동료들과의 '수다'였다. 회사는 트레이더들이 화이트보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때, 바에서 농담을 주고받을 때, 누군가의 대화를 엿들을 때 투자에 필요한 정보들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과는 성과로 나타났다. 저자는 "JP모건 등 사무실로 직원들을 불러낸 월스트리트의 금융계는 재택근무를 고수했던 유럽 은행들보다 코로나 혼란기를 빨리 극복했다"고 분석했다.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짚어낸 '인류학적 접근'이 숫자와 데이터가 지배하는 금융시장에서 한 건 올린 사례였다.

    "빅데이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준다. 하지만 그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는 말해주지 못한다." 파이낸셜타임스 편집국장이자 케임브리지대 인류학 박사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데이터와 통계는 그 자체론 중립적이지만, 문제는 그를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조금씩은 오염된 렌즈를 갖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종종 사안을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이는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우리는 이 뻔한 말을 항상 잊고 지낸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역시 "트럼프가 사용하는 언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나머지 본인을 포함한 언론인들이 2016년 미국 대선 때의 '트럼프 현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많은 언론인이 대선 후보 토론 때 'bigly'(크게)라는 성인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부사를 습관적으로 내뱉은 트럼프를 단지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는 현상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무의식적인 편향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인류학을 그 해법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당연해 보이는 문제를 외부인의 시선에서 평가하는 인류학적 방법으로 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인류학적 방법론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기업도 많다. IT 회사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려 '인류학 팀'까지 조직했다. 인텔 인류학자들이 하는 일은 글로벌 시장에서 맞닥뜨리는 문화적 '낯섦'을 익숙한 것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개인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20세기 말에 인텔은 아시아 시장 진출을 망설이고 있었다. 소득 수준이 비교적 낮았던 아시아 국가들에서 PC를 판매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 이곳에 교두보를 놓은 것이 인류학자들이었다. 이들은 현지 사람들의 물건 구매 가치관을 분석했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소득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교육열이 높았다. 중국에선 아이들이 게임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 부모가 많았다. 인류학 팀은 '교육용'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인텔은 말레이시아에선 '교육용 PC' 마케팅에 주력했고, 중국에선 게임 기능을 제한하는 프로그램을 탑재해 판매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

    반대로 미국의 이유식 회사 '거버'는 인류학적 관점의 부재가 실패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거버는 20세기 중반 서아프리카에서 이유식을 판매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썼던 웃는 아기 사진이 붙은 이유식 통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문화권에선 통에 붙은 사진은 그 '내용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유식 통을 본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기로 만든 식품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거버는 '식인종'이라는 오해를 받아야 했다.

    저자는 "인류학은 타인에게 공감하고 문제를 새롭게 통찰하는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경제 모형,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인류가 쌓아온 분석 도구들은 사회적 맥락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특히 자기 집단의 안전만을 생각하고 시야를 내부로 돌리게 되는 팬데믹 시기에 인류학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경제지 기자라 인류학의 문제 해결 사례가 비즈니스 영역에 치중된 것은 아쉬운 부분. 아직 인류학적 사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 한 인류학자의 일갈을 기억하면 된다. "그건 당신의 세계관이지, 모두의 세계관이 아니다!"

    기고자 : 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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