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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2030] 에어컨 없이 살 수 있을까

    백수진 국제부 기자

    발행일 : 2022.08.12 / 여론/독자 A2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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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오피스텔 실외기가 고장나 에어컨이 먹통이 됐다. 폭염으로 에어컨 고장이 잇따라 수리하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며칠은 짐 싸 들고 친구 집을 전전하며 '폭염 난민'으로 지냈고, 며칠은 밤늦게까지 에어컨 나오는 카페를 배회하다 집에 돌아갔다. 문을 열면 낮 동안 방에 갇힌 열기가 훅 코끝에 끼쳤다. 얼린 물통을 끌어안고 있어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몸소 겪기 전까진 매일 경신되는 최고기온을 숫자로만 알았다. 바깥세상은 펄펄 끓어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으로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몇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선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녹고 세계 곳곳에서 폭우·가뭄 등 이상 기후 현상이 계속됐는데도 먼 나라 일로만 여겼다. 평균기온이 20~25도로 에어컨 없이 충분히 여름을 났던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도 이제는 40도 넘는 폭염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에어컨과 선풍기는 이미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소득 수준이 높아진 개발도상국에서도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2050년까지 전 세계 에어컨 수요가 3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30년 동안 1초에 10대씩 에어컨이 팔려나가는 셈이다. 폭염이 에어컨을 부르고, 늘어난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구온난화를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8일부터 수도권에 쏟아진 이례적 폭우로 서울 강남에선 차량 수백 대가 물에 잠겼고 도로가 마비됐다. 도로가 물바다가 된 가운데, 둥둥 뜬 차량 보닛 위로 올라가 해탈한 듯 휴대전화를 보는 자동차 주인 사진이 화제가 됐다. '서초동 현자(賢者)'라며 재난 영화 포스터를 합성하는 등 패러디물이 쏟아졌지만, 현실에선 현자처럼 초연하기 어려운 이가 대다수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18억명 이상이 대홍수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추정된다. 이 중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 살며, 10명 중 4명은 하루 5.5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빈곤층이다. 파키스탄에선 우기가 이례적으로 길어져 지난 한 달 새 최소 549명이 사망하고, 가옥 4만채가 침수됐다. 방글라데시도 122년 만의 최악 홍수로 200명 이상이 숨지고, 피해가 심한 지역에선 마을이 통째로 잠기면서 이재민이 700만명 이상 발생했다. 기후학자들은 동남아시아 우기가 예측할 수 없이 변하고 있으며, 홍수 규모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후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혹하지만 선진국·부유층이라고 피할 순 없다. 홍수·폭염·가뭄 등 기상 이변이 전염병을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하와이대 연구진에 따르면 폭우·홍수 때는 모기가 대량 번식하면서 바이러스가 더 빠르게 퍼졌고, 기온 상승이나 가뭄으로 서식지를 잃고 떠도는 쥐·박쥐 등이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는 사례가 늘었다. 속도 차이일 뿐, 기후변화의 대가는 모두가 나눠서 치를 수밖에 없다. 기후 위기 시대에 살아남을 대응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기고자 : 백수진 국제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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