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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임윤찬, 바흐 시대처럼 객석을 등지다

    김성현 기자

    발행일 : 2022.08.12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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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후 국내 첫 무대

    10일 밤 서울 롯데콘서트홀. 정장과 셔츠, 구두와 넥타이까지 '올 블랙(all black)'으로 차려입은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에서 곧바로 환호성이 터졌다. 일부 관객은 입장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기도 했다. 연주 시작 전부터 기립 박수를 보내는 것도 무척 이채로운 풍경이었다.

    지난 6월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거둔 뒤 국내 첫 무대. 2000여 객석도 그의 우승 소식 직후 이미 매진을 이뤘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는 회심의 반전이 있었다.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연주하면서 피아노 뚜껑을 떼고서 무대 반대편으로 돌린 뒤 객석에서 등을 돌린 자세로 연주한 것. 바흐 당대의 바로크 시대에는 지휘자가 따로 없이 연주자가 단원들과 마주 보면서 협연하던 광경을 되살린 편성이었다.

    고음악 전문 연주자뿐 아니라 다니엘 바렌보임 같은 명지휘자 겸 피아니스트들도 바로크 음악이나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할 때 즐겨 택하는 구성이다. 졸지에 1층 객석 관객들은 임윤찬의 등만 쳐다보게 됐고, 거꾸로 무대 뒤편 합창석의 관객들이 '복권 당첨'된 것처럼 연주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두 달 전 콩쿠르 당시 그는 2차 라운드에서 바흐 독주곡을 연주한 뒤 다음 곡인 스크랴빈 소나타 2번으로 넘어가기 앞서 건반 앞에서 묵상하듯이 90초간 침묵을 지키는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임윤찬은 "바흐에게 너무나 영혼을 바치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스크랴빈으로 곧바로 넘어가기 힘들었다"고 '음악의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을 고백했다.

    이날도 임윤찬은 악장을 시작할 때마다 직접 왼손으로 박자를 젓고 고음악 연주 단체인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단원 12명과 눈빛을 나누면서 호흡을 맞췄다. 1악장 도입부에서 출발은 살짝 불안했다. 하지만 느리고 서정적인 2악장에서 단원들이 활 대신 손으로 현(絃)을 뜯는 피치카토(pizzicato)에 맞춰 임윤찬의 오른손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명징하면서도 영롱했다. "평소와는 다른 피아노 위치에서 상대적으로 낯선 바로크 연주 단체와 협연하면서도 적절한 밸런스를 잡아내고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낼 줄 아는 본능적 감각이 있다"(피아니스트 김주영)는 말이 실감 났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콩쿠르 결선 당시 세계를 매료했던 폭발적인 타건(打鍵)이 되살아났다. 10여 분의 협연을 마친 뒤 객석의 박수가 쏟아지자 임윤찬은 아무런 말 없이 깍듯하게 90도로 꾸벅 절하는 특유의 인사법을 선보였다.

    이날 무대는 현재 임윤찬의 소속사인 공연 기획사 목프로덕션의 창립 15주년 기념 공연. 임윤찬뿐 아니라 노부스 4중주단, 임윤찬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조성호 도쿄 필하모닉 클라리넷 수석까지 인기 연주자들이 총출연한 '올스타전'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당초 임윤찬에게 배당된 곡도 바흐 협주곡이 전부였다.

    하지만 관객들이 못내 아쉬운 듯 계속 박수를 보내며 거듭 무대로 불러내자 임윤찬은 바흐와 브람스의 독주곡 두 곡을 '깜짝 앙코르'로 선사했다. 첫 앙코르인 바흐의 '파르티타' 1번 사라방드에서는 명징한 오른손과 강력한 양손 트릴(trill·두 음을 교대로 빠르게 연주하며 내는 장식음)은 물론, 이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대담하고 자유로운 박자 감각이 돋보였다. 콩쿠르의 막중한 부담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이어서 임윤찬의 공연 역시 '광클(빛의 속도로 클릭한다는 의미의 신조어)' 대상으로 떠올랐다. 오는 20일 롯데콘서트홀과 26일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아트홀 등 그의 협연 무대도 이미 매진을 이뤘다. 12월 10일 예술의전당 독주회 역시 치열한 예매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그도 인기를 실감하고 있을까. 공연 직후 무대 뒤로 찾아갔지만 이미 자리를 총총 떠난 뒤였다. 하루 12시간까지 피아노를 친다는 연습 분량을 아마도 마저 채우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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