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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시대… 내 은퇴자금 자동으로 불려줘요

나와 같은 직급으로 같은 월급을 받고, 같은 기간을 일한 동료는 퇴직금이 나와 같을까? 그렇지 않다. 퇴직연금에 별 관심이 없는 나보다 동료의 퇴직금이 훨씬 많을 수 있는 것이다. 퇴직금은 잘 운용하면 불릴 수 있다.

나의 퇴직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먼저이다. 직장인이라면 보통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회사에서 두 유형 중 하나를 택해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DB형은 회사가 운용 책임을 지고 정해진 퇴직금을 보장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안정성이 높지만 예금처럼 수익률이 낮은 게 단점이다. 반면 DC형은 퇴직금을 근로자 본인이 운용하는 대신, 성과에 따라 추가로 이익을 볼 수도 있고 손실을 볼 수도 있다.

DC형은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할 수 있다. 지난해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 295조6000억원 중 원리금보장형이 86.4%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퇴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 때문인지, 아직 원금 손실 가능성이 적은 원리금보장형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다.

◇퇴직연금 놀리지 말고 '굴려야' 하는 이유

퇴직금 유형을 선택하는 데서부터 동료와 나의 퇴직금이 벌어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DB형은 1.52%, DC형은 2.49%다. 수치상 DC형 가입자 퇴직금이 더 많이 쌓였다고 볼 수 있다. 운용 방법별 수익률은 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금리가 계속 하락하면서 지난해 원리금보장형 수익률은 1.35%에 그쳤다. 실적배당형 수익률은 6.42%로 높았다. 주가가 크게 올랐던 2020년에는 실적배당형 평균 수익률이 10.67%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원리금보장형은 1.68%에 그쳤다. 운용 방법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10배 가까운 수익률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실적배당형은 자산 시장이 폭락하면 그만큼 수익률이 떨어질 위험도 더 크다.

'어떤(what)' 상품을 '얼마나(how much)' 그리고 '얼마 동안(how long)' 운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수익률이 갈린다. 단순히 운용 방식을 잘 선택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퇴직연금을 굴려야 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한 근로자가 코로나 사태로 주식 시장이 침체했던 2020년 초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팔고 실적배당형 상품인 펀드를 매수했다면 꽤 높은 수익률을 실현했을 수 있다. 코스피 상승률은 2019년 말 7.67%에서 2020년 말 30.75%로 폭등했다.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시대 열린다

2005년 도입된 퇴직연금 제도는 어느덧 17년 차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생소하고 어렵게 느끼는 근로자가 많다. 법적으로 회사(사용자)가 근로자(가입자) 교육을 매년 1회 이상 해야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은 회사가 연 5~8회씩 은퇴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 일본은 회사 내에서 DC형 퇴직연금 트레이너를 선발하는 등 체계적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잠자고 있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시의적절하게 운용하도록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이 도입됐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6주간 운용 지시가 없는 경우, 사전에 선택한 상품으로 적립금을 자동 투자하도록 하는 사전지정운용제도이다. 구체적으론 4주간 운용 지시가 없으면 회사가 근로자에게 통지해야 하고, 통지 후에도 2주 이내에 지시가 없으면 자동으로 사전에 정한 디폴트 옵션으로 운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DB형과는 관계가 없다. 디폴트옵션은 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주요 대상이다.

디폴트 옵션에 적합한 상품은 고용노동부 상품심의위원회가 심의하고 승인해 선정된다. 이 상품 공시는 오는 10월 중으로 예상된다. 디폴트옵션 판매는 연말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타깃데이트펀드(TDF), 장기가치상승추구펀드 등 장기 투자에 적합한 상품으로 구성된다. 궁극적으로 퇴직연금의 장기 수익률을 높이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마이 옵션' 가지는 자세 필요

금융권 관계자들은 디폴트 옵션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상품 중 TDF가 결국 주를 이룰 것으로 보고 있다. TDF는 자신의 은퇴 시점에 맞춰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은퇴 시점이 다가올수록 주식 비율을 줄이고 채권 비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DC형과 유사한 미국의 퇴직연금에서 TDF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이미 30%를 넘어섰다. 2025년에는 45%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오르는 기조가 계속되면서 원리금보장형 상품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각 금융사가 보장하는 이율도 2.25~3.6% 수준으로 예년보다 높아졌다. 수익률보다 안정성을 추구한다면 살펴봄 직하다. 미국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선 '백만장자로 퇴직하기'가 유행해 은퇴 전 퇴직연금 계좌에 100만달러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연금부자'로 퇴직하려면 디폴트 옵션은 물론이고, 나만의 상품을 구성해 운용하는 '마이 옵션'을 가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픽] 퇴직연금 유형별 연간 수익률 차이

[그래픽] 디폴트 옵션 상품 예시 기고자 : 이지은 한화생명 63FA센터 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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