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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41) "유대인은 모두 한 형제다" 아픈 역사 딛고 뭉친 비결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발행일 : 2022.08.09 / 여론/독자 A2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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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부모, 자녀 유치원 보낼때 첫마디는… "험담하지 말라"

    유대인 부모들이 자녀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 해주는 말이 있다.

    "네가 이제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을 만나게 될 텐데, 두 가지를 명심해라. 첫째, 네가 말하는 시간의 두 배만큼 친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사람은 누구나 단점과 허물이 있단다. 그러니 친구의 단점과 허물에 개의치 말고 친구 속에 숨어 있는 장점과 강점을 찾아보거라.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보다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친구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둘째, 어떤 경우에도 친구 험담을 하지 말아라. 유대 경전 미드라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남을 헐뜯는 험담은 살인보다도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으나, 험담은 반드시 세 사람을 죽인다.' 곧 험담을 퍼뜨리는 사람 자신, 그것을 말리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그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

    공동체 정신, 이스라엘 키부츠로 연결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은 신바빌로니아에 성전과 성벽이 파괴되고 멸망당해 하층민들은 추방되고 상류층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 이를 '바빌론 유수'라 부른다. 이후 성전이 없어진 유대교는 '성전 중심의 종교'에서 '배움의 종교'로 바뀌게 된다.

    그로부터 50년 뒤 성경에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페르시아의 키루스왕이 기발한 발상으로 강 상류에 둑을 쌓아 물줄기를 바꾸는 전략으로 강 한가운데 건설된 난공불락의 바빌론을 정복했다. 그는 '키루스 실린더'라 부르는 점토판에 "세계 최초 인권 선언"을 발표하여 포로로 잡혀 와 있던 유대인을 아무 조건 없이 해방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때 유대인들은 키루스왕을 자기들을 구원한 메시아로 보았고, 그가 믿고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는 선악의 이분법적 개념이 강화되고 일신교에서 유일신교로 진화하게 된다. 이후 유대인들은 3차에 걸쳐 가나안으로 돌아가 성전과 성벽을 재건했다. 하지만 더 많은 유대인이 바빌론에 남거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디아스포라, 곧 종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감으로써 이때부터 유대 민족의 방랑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를 '1차 이산'(離散)이라 부른다. 이때 가나안으로 귀국한 유대인 후손마저도 훗날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망해 서기 70년 나라가 없어진 이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다. 이것이 '2차 이산'이다.

    이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남의 나라, 다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끼리 똘똘 뭉쳐야 했다. 디아스포라 수칙의 요점은 "모든 유대인은 그의 형제들을 지키는 보호자이고, 유대인은 모두 한 형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제애'를 바탕으로 하는 디아스포라의 운영 방식은 '능력껏 벌어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쓴다'는 사상이었다. 여기서 '능력껏 번다'는 것은 돈 벌 때는 효율을 중시하는 오늘날 자본주의 방식을 택했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쓴다'는 것은 분배를 중시하는 공산주의 방식을 따랐다.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공동체 내에 각종 복지 제도가 완벽히 구비되어 운영된다는 점이다. 디아스포라는 이러한 유대인 고유의 공동체 정신으로 역사의 험난한 굽이굽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또 이러한 공동체 정신이 흩어져 사는 세계 각지의 디아스포라를 하나로 묶어 유대 사회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게 이스라엘의 키부츠다. 키부츠는 구성원들의 노동 수익금은 물론 개인들이 바깥에 나가 번 돈조차도 공동체에 내놓아 공동 운영비로 쓰는 대신 마을 회관의 세 끼 식사를 포함한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이 무료로 배급된다. 한마디로 대가족 생활이다. 공동체는 육아와 교육도 책임진다. 생후 3개월부터 합숙 육아를 시작으로 18세까지 합숙 교육을 한다.

    고대부터 이러한 삶의 방식을 추구한 유대인들에게 자연히 공동체 구성원 간의 단결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렇게 등장한 게 '유대인의 고리론'이다. 이는 유대 신앙이 강조하는 생활 철칙으로 자리 잡아 유대인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살게 되었다. 이는 나 하나가 아니고 동족이 다 같이 잘살아야 함을 강조해, 유대인은 모두가 한 가족으로,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도 유대인이라는 대가족으로 뭉쳐져 있음을 뜻했다.

    하지만 "아무리 길고 훌륭한 쇠사슬이라도 한 개만 부러지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탈무드의 경고가 있다. 디아스포라 공동체 구성원 간의 고리, 곧 신뢰를 깨는 것이 험담이다. 곧 히브리어로 '악한 혀'를 뜻하는 '라손 하라(lashon hara)'이다. 험담은 인간관계를 파괴해 공동체 사슬마저 끊어 놓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를 극도로 경계했다.

    성서의 레위기 19장 16절은 "너는 네 백성들 가운데로 험담하며 돌아다니지 말라"고 가르친다. 또한 미드라시에는 '라손 하라'를 살인 이상의 죄로 여기고 이를 어기는 자는 입을 더럽혀 토라의 말씀과 기도의 말씀까지도 더럽힌다고 했다. 유대 현자들은 '라손 하라'에 대한 형벌이 '나병'이라고 믿었다. 나병 환자는 공동체에서 같이 살 수 없듯이 험담하는 사람도 공동체에서 함께 살 수 없었다.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도 "험담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혀는 화살… 한번 쏘면 되돌릴수 없어

    사람들은 험담하는 것은 나쁘지만, 부정적일지라도 사실인 경우, 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유대 율법은 이런 관점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사실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어떠한 말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며 이 또한 '라손 하라'로 규정하고 있다. 유대 윤리는 심지어 은근히 남의 명예를 손상하는 행위도 '아박 라손 하라(Avak Lashon hara)' 곧 '라손 하라의 먼지'라 칭해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한다. 교묘히 비꼬는 말투나 말 이외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행동, 곧 특정인 이름이 거론될 때 인상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흔들거나, 눈을 굴리거나, 입을 삐죽거리며 부정적 속내를 내비치는 표정도 잘못된 행동에 속한다.

    하물며 있지도 않은 일을 이야기하는 '무고'나 중상모략인 '모치 셈 라(motzi shem ra)'는 율법 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이다. 유대인들은 혀를 화살에 비유한다. 왜냐하면 한번 쏜 화살은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의 기본 덕목은 "혀를 지키는 것"이라고 탈무드는 강조한다. 오늘날 SNS상의 공격성 글이나 악플성 댓글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악플은 심리적 살인 행위이다.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다.

    [토론에 강한 유대인들, 왜?]

    건설적 비판 권장하되 비난·비방 엄하게 금지… 가정·학교서 철저 교육

    유대인의 토론 문화가 성숙한 것은 비판은 존중하되 인신공격적 비난과 비방은 엄격히 금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이를 단단히 가르치며, 이에 입각한 토론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를 인성과 교양의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다. 그들의 토론 문화에는 '토론이 건설적인 비판이어야지 파괴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유대인들은 토론할 때 '비판(批判), 비난(非難), 비방(誹謗)'을 엄격히 구분한다. 우선 '비판'이란 한자가 말해 주듯 비(批) 자는 비평한다는 뜻이고 '판'(判)은 바로잡는다는 의미다. 곧 상대의 오류를 명확히 지적하며 그에 대한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를 '비판'이라 한다. 유대인들이 토론에 강한 것은 바로 이 비판 정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편 '비난'의 비(非)는 비방한다는 뜻이고, 난(難)은 힐난한다는 의미다. 곧 상대방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 힐난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악의가 있다. 또 '비방'의 비(誹)와 방(謗) 모두 헐뜯는다는 의미다. 곧 무조건 상대방을 헐뜯고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파괴적이다. 유대인들은 이를 '라손 하라'로 규정하여 엄격하게 금한다.

    기고자 :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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