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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事一言] 빙하의 맛

    이진준 뉴미디어 아티스트·KAIST 교수

    발행일 : 2022.08.09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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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가 아이스크림처럼 보였다. 영국 유학 시절 어느 겨울이었다. 아이슬란드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지구온난화로 푸른 빙하가 떠내려오는 장면을 봤다. 문득 빙하 맛이 궁금해졌다. 다큐멘터리가 채 끝나기도 전, 나는 아이슬란드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도착해서야 알았다. 북반구의 겨울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아이슬란드는 진짜 이름 그대로 '얼음 땅(ice land)'이 된다는 것을. 충동에 이끌려 오는 바람에 방한 장비도 제대로 없었다. 수도 레이캬비크 공항의 기념품 가게에서 가장 두툼한 머플러와 털모자 등을 부랴부랴 사고, 스노 체인을 단 하얀 차를 빌렸다.

    객기 어린 이방인을 태운 하얀 차는 하얀 눈보라를 뚫고 한참을 달렸다. 도로 표지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순백의 질주. 가수 아우스게이르(Asgeir) 노래처럼 아이슬란드 특유의 몽환적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 하얀 터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세상 끝에 펼쳐진 하얀 사막에 혼자만 존재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잠시 차 문을 여는 찰나, 우주의 정적이 일순간 온몸을 감싸는 듯하더니 갑자기 살벌한 추위가 폐 깊숙한 곳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매서운 추위였다. 계속 가야 하는가 아니면 이제라도 돌아가야 하는가. 여기까지 달려온 게 아깝기도 하고 평생 빙하의 맛을 궁금해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매 순간 갈등하며 닷새 만에 비로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마침내 커다란 빙하를 붙잡고 서서 바로 빙하의 맛을 보았다. 그래서 맛이 어떠했느냐고. 비밀이다.

    돌이켜 보면 진짜 설렌 때는 여행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빙하의 맛을 궁금해하며 순백의 터널을 달려가던 그 닷새 동안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야기했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려면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엔 각자의 빙하가 존재한다. 마음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 시작할 때일지 모른다.
    기고자 : 이진준 뉴미디어 아티스트·KAIST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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