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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조 현수막… 경찰은 "치울 방법 없다"

    김휘원 기자

    발행일 : 2022.08.08 / 사회 A1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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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 현대차 삼성동 사옥 앞
    "죽여" "감방으로" 대로변에 빼곡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삼성역 3번 출구에서 빠져나와 400걸음 정도를 걸으니 보도에 심긴 가로수마다 형형색색의 현수막과 리본들이 무더기로 걸려 있었다. 현수막에는 붉은색이나 푸른색 페인트나 스프레이 등으로 삐뚤빼뚤 "차라리 나를 죽여라" "이러다 다~죽어"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세어보니 20m 정도 되는 거리에 현수막만 67개였다. 가로수에 끈으로 묶어둔 피켓이나 입간판도 50개가 넘었다. 주민들 사이에선 "마치 성황당(城隍堂)을 보는 것 같은 풍경"이란 반응이 나온다.

    이곳은 현대차 국내사업본부가 있는 삼성동 오토웨이타워 앞 보도다. 여기 걸린 현수막은 모두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에서 내건 것이다. 이 일대는 하루 10만명 이상이 찾는 코엑스로부터 불과 500m 떨어져 있고 이 건물 골목 안쪽에는 휘문중·고등학교가 있다. 보도 한쪽을 가득 메운 현수막들 탓에 "볼썽사납다" "섬뜩하다"는 인근 주민 민원이 잇따르고 있지만 현대차는 물론 구청이나 경찰 모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7일 현대차와 강남구청 등에 따르면 이곳의 현수막이 이 일대를 뒤덮을 정도로 많아진 건 석 달 전쯤부터다. 고용을 보장해 달라며 2015년부터 사측을 비판하는 집회를 해오던 노조 측이 지난 5월 사옥 앞에 천막을 쳤는데, 이를 계기로 기존 10여 개에 불과했던 현수막 개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코엑스몰을 자주 찾는다는 김모(27)씨는 "지나가면서 자주 보는 플래카드지만 '죽음' 등의 단어가 거친 필체로 적혀 있어 볼 때마다 무당이 생각나고 오싹하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이나 구청은 별다른 대응을 못 하고 있다. 불법이 아니라는 게 이유다. 노조 측이 60여 개 현수막과 50여 개 피켓 등을 집회 물품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옥외광고물법상 현수막 전용 게시대 외의 장소에 걸린 현수막은 모두 불법이므로 철거 대상이다. 하지만 신고된 집회에 사용되는 현수막은 예외다. 노조 측은 매일 이곳에 집회 신고를 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이 관할인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이들이 연다는 집회는 매일 0시부터 23시 59분까지인데 정작 현장에는 아무도 없을 때가 많다"며 "이른바 주인 없는 집회의 현수막일지라도 함부로 건드렸다간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강남구청도 손쓸 도리가 없다고 한다. 구청 관계자는 "바로 건너편에 코엑스가 있어 외국인 관광객도 많아 거리 미관이 중요한 곳"이라면서도 "학부모 등 지역 주민들이 개수라도 줄여 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불법이 아니니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집회가 실제 열리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집회 신고를 했다는 것만으로 현수막이 도심 곳곳에 도배되다시피 하는 상황이 잇따르자, 지난해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실제로 집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만이라도 현수막을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노조 측은 현대차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집회를 그만둘 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현대차가 노조에 가입한 직원을 해고하기 위해 '기획 폐업(위장 폐업)'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원이 있는 판매 대리점을 폐업하면서 직원들을 쫓아낸 후, 그 인근에 새 직원을 고용해 곧바로 다시 새 대리점을 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집회 주최 측은 현대차 판매 대리점 소속 직원들로,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므로 이들을 현대차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도 최근 나왔다"고 했다. 현수막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법에 따라 정당하게 신고한 집회인데 뭐가 잘못됐느냐"면서도 "주민들은 보기 싫고 시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왜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를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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