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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올린 곡물값, 넉달 연속 꺾였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손진석 기자

    발행일 : 2022.08.08 / 종합 A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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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 밀·옥수수 수출 재개, 세계식량가격지수 8.6% 급락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한 식량 가격과 유가(油價)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다만 국제 곡물가나 원자재 가격은 여전히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 인플레이션이 끝나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가격이 하락한 만큼 경기 침체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6일(현지 시각)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7월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6월(154.3)보다 8.6% 하락한 140.9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월 대비 하락 폭으로는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크다. 지난 4월부터 4개월 연속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합의로 봉쇄됐던 흑해 항구에서 우크라이나산 밀과 옥수수 수출이 재개됐기 때문이다. 북반구의 밀 수확이 본격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외국 화물선이 우크라이나에 입항해 곡물 운송을 재개하기도 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014~2016년 평균을 100으로 잡기 때문에 140을 넘는 현재 지수도 높은 편이다. 2015~2020년에는 6년 연속 100을 밑돌았다.

    식량가격지수를 구성하는 지수 중 채소 및 식용 기름 가격을 측정하는 유지류 지수는 6월 211.8에서 7월 171.1로 한 달 만에 19.2% 급락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한동안 팜유 수출을 중단했던 인도네시아가 앞으로는 팜유 공급을 충분히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이다. 유지류 지수 외에도 식량가격지수를 구성하는 육류가격지수(124), 유제품가격지수(146.4), 곡물가격지수(147.3) 등도 모두 6월보다 하락했다.

    국제 유가는 빠르게 하락 중이다. 지난 5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8.53달러로 마감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미국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주유 가격은 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미 전국 평균 휘발유 값은 갤런(3.78L)당 4.08달러다. 지난 6월 중순 갤런당 5달러를 넘어선 뒤로 7주 연속 하락, 두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약 1달러(20%)가 하락했다.

    텍사스·플로리다·조지아 등 중남부 중심으로 22주(州)에서 평균 기름 값이 갤런당 3달러대로 내려왔다. 텍사스·아이오와·캔자스의 일부 주유소에선 '갤런당 2.99달러' 가격표까지 붙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상반기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기 이전의 가격이다.

    미 유가가 빠르게 하락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인들이 고유가에 대응해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미루거나 출퇴근 시 카풀을 하고 재택근무를 늘리며 휘발유 소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경기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전분기 대비로 올해 1·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이미 경기 침체에 빠졌을 수도 있다고 경제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급속한 물가 하락이 경제 전반엔 좋은 소식만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물가가 최고점을 찍고 서서히 내려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경기 하락세를 방어하는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10일 발표될 미국의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에 대한 시장의 전망치는 8.9%로서 6월(9.1%)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물가가 정점을 지나더라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지난 6, 7월에 이어 다음 번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6일 연준의 미셸 보먼 이사는 "우리의 주요 과제는 인플레이션 억제"라며 "물가가 유의미하게 하락하기 전까지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금리 인상이 선택지에 올라와야 한다"고 했다. 세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이 현실화될 경우 물가 안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 활동은 그만큼 위축될 확률이 높아진다.

    일각에서는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하는 경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적지 않다고 경고한다. 네이선 시츠 시티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인터뷰에서 "연준이 전 세계적인 수요 둔화와 끈질긴 인플레이션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압박을 받고 있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라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26일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2.3%로 전망해 4월에 발표한 종전 전망치(3.7%)에서 1.4%포인트나 하향 조정했다.

    기고자 : 뉴욕=정시행 특파원 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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