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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용산 '잃어버린 10년'의 교훈

    김미리 문화부 차장

    발행일 : 2022.08.06 / 여론/독자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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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3년 좌초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계획에 재시동을 걸었다. 계획안 발표를 보면서 10여 년 전 인터뷰한 두 건축가가 떠올랐다. 다니엘 리베스킨트와 렌조 피아노였다. 리베스킨트는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의 마스터플랜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파리 '퐁피두 센터' 등을 설계한 거장이다.

    이 대가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은 용산 프로젝트였다. 리베스킨트는 국제업무지구의 큰 그림을 그리는 마스터플랜 담당자였고, 렌조 피아노는 그중 가장 높은 111층(620m) 빌딩 설계자였다. 두 사람은 작은 도시 하나를 만든다는 생각에 무척 고무돼 있었다. 고령의 렌조 피아노는 자신이 설계한 영국 최고층 빌딩 '더 샤드'보다도 두 배 높은 "인생 역작"이라면서 모형 스무 개를 들고 와 열정을 불살랐다. 이들뿐만 아니었다. 에이드리언 스미스, 비야케 잉겔스(BIG) 등 스타 건축가 19팀이 설계자로 선정됐다. '건축계 어벤저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랜드마크가 서울에 생긴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땅은 명소는커녕 폐허가 됐다. 얼마 전 근처 호텔에 갔다가 내려다본 용산 정비창 부지는 서울 한복판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황폐했다. 여의도공원 두 배 되는 땅(약 50만㎡)이 파헤쳐진 상태로 덩그러니 방치돼 있었다.

    부지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 등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됐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성공 열쇠는 지난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계획이 무산된 결정적 이유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알려졌지만, 당시 사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진짜 사업의 발목을 잡은 건 돈보다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후임자의 저주"란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후임자가 전임자 흔적을 지우기에 급급한 한국의 고질적 문화가 사업 동력을 잃게 한 주원인 중 하나였단 얘기였다.

    2007년 사업이 시작해 2013년 좌초되기까지 6년 동안, 서울시장부터 코레일 등 컨소시엄(드림허브PFV)에 참여한 30여 민간 회사와 공기업 수장이 거의 다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신임 대표 대부분이 전임자가 추진한 것을 계승하기보다 재검토·보류·축소했다고 한다. 사공들이 일사불란하게 노 저어도 거대한 배를 움직이기 어려운 판에, 각자 다른 방향으로 젓다가 그마저도 중간에 모조리 바뀐 형국이다. 좌초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특히 바뀐 선장이 꿈꾸는 항로는 아예 달랐다. 박원순 시장에게 조언한 한 건축 전문가는 "박 시장 앞에서 '개발'은 금기어였다. '재생'의 적으로 받아들였다. 수십 조 들어가는 공공 프로젝트엔 정책의 연속성이 생명이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10년 이상 걸리는 대규모 공공 개발 사업은 종종 긴 열차에,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행정가는 기관사에 비유된다. 다양한 승객을 태우고 가는 기관사처럼, 도시라는 열차를 운행하는 행정가는 장기 비전을 갖고 여러 이해를 가진 이들을 태워 목적지를 향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행정가들은 기관사 자리에 오르면 갑자기 방향을 홱 틀어 유턴부터 한다. 그러니 탈선할 수밖에 없다. 대형 사업들이 고꾸라지고 그때까지 투자한 시간과 돈은 날아가 버린다.

    도시를 움직이는 기관사는 혼자 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운전하겠다는 욕심도 거둬야 한다. 자신이 담당한 구간까지 최선을 다해 안전 운행한 뒤 후임 기관사에게 운전대를 넘겨야 한다. 후임 기관사는 방향을 조금 바꿀 순 있어도 기존 선로를 연결해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도시라는 열차가 무리 없이 종착역에 다다를 수 있다. 용산이 다시 10년을 잃지 않기 위한 지혜다.
    기고자 : 김미리 문화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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