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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우영우가 재택근무를 했다면

    정시행 뉴욕 특파원

    발행일 : 2022.08.04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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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에 뉴욕의 한 대형 로펌에 인터뷰하러 갔을 때 일이다. 소속 변호사가 700여 명이라는데, 맨해튼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사무실에서 눈에 띄는 사람은 선임급 변호사들과 창구 직원을 포함해 열 명도 안 됐다.

    "코로나로 아직 재택근무를 하나 보죠?" 물었더니, 50대 파트너 변호사는 "풀타임 출근하라고 얘기 못 하죠. 이제 다들 원격근무에 익숙해져서…. 나 같은 사람이야 주 3일은 나오지만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30여 년 전 처음 법조인이 됐을 때 선배들과 매일 부딪치며 일을 배우고, 사무실 벽에 걸린 미(美) 건국의 아버지들 액자를 보며 정의로운 법조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제대로 배운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사무실이 텅 빈 것은 이 로펌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의 사무실 보안업체가 뉴욕 월가와 글로벌 대기업 등 160곳을 조사했더니, 팬데믹 이전처럼 주 5일 대면 출근을 하는 근로자는 8%에 불과했다. 오로지 원격근무만 하는 근로자는 30%였다. 맨해튼 거리와 극장은 관광객으로 붐비는데, 일터인 사무실 공실률은 60%에 달한다. 코로나 감염이 걱정돼서, 점심값이 올라서, 출퇴근에 시간 낭비 않고 편하게 일할 수 있어서 등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재택근무를 고집하는 근로자가 줄지 않아 기업과 공공기관은 조직 문화가 와해되고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며 비상이지만, 구인난으로 노동자 우위 시대라 출근을 강요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다가 이런 상상을 했다. 만약 20대 신입 변호사 우영우가 재택근무만 하면서 동료와 줌 회의와 카카오톡 대화에 의존했다면, 의뢰인의 온갖 사정을 서류와 이메일로만 검토했다면, 하나의 직업인이 저렇게 빨리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었을까?

    우영우는 매번 의뢰인과 참고인을 만나 진실을 오감으로 파악하고, 시골 마을 나무 한 그루, 강남 학원가 편의점까지 훑으며 사건의 숨겨진 맥락을 찾는다. 그에게 창의적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등장하는 '고래'는 온라인 가상 현실이 아닌 진짜 현장과 진짜 사람들을 만날 때 얻어지는 '진짜 공부'의 기적 같은 순간을 상징한다. 자신을 편견으로 대했던 회사 선배와 구내식당 밥을 먹으며 실력과 진심을 보여줄 기회를 얻고, 재판을 지연하지 않는 판사에게서 법정의 '짬'을 배우며, 뒤통수 치는 입사 동기와 부딪치며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영리함도 터득한다. 사내 로맨스도 원격 근무에선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현실의 MZ세대는 이직률이 높고 기성세대와 소통이 단절됐다는 여러 징후가 나온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가 아니어서 화려한 출발을 못 하는 게 아니다. 치열한 입시·취업 경쟁과 팬데믹 탓에 학교 공부를 사회에서 업그레이드할 기회가 박탈됐을 수 있다. 선배들의 고민과 지원이 필요한 때다.
    기고자 : 정시행 뉴욕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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