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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한인권재단 설립 더 이상 미루지 말자

    홍용표 한양대 교수·前 통일부 장관

    발행일 : 2022.08.04 / 여론/독자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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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빠진 사람이 다급하게 살려달라고 외치면 어떡해서든 도울 방법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어디에 사는지, 어떤 말투를 쓰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를 확인하고 선별적으로 구해준다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2년 전 서해에서 이런 비인간적인 일이 실제 발생했다. 우리 국민 한 명이 바닷물에 빠져 표류하다 북측 해역에서 발견됐다. 북한에서 직접 밝힌 당시 상황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북한 어선은 바닷물에서 사람을 건져내는 대신 신고부터 했다. 현장에 출동한 북한 경비대도 먼저 신분 확인을 요구했는데,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공포탄을 쐈고, '놀라 엎드리며 도주할 듯한 행동'을 보이자 총탄 10여 발로 사살했다고 한다. 얼마 후 북한이 내놓은 입장에 더욱 기가 막힌다. 이번 일이 "남조선 전역을 휩쓰는 악성 비루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위험천만한 시기에 자기 주민을 제대로 관리 통제하지 못하여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방역이 중요해도 그것을 이유로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이토록 하찮게 취급하는 북한 체제에서 주민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이를 통해 암담한 북한의 인권 현실을 가늠할 수 있었다.

    2016년 9월 시행된 북한인권법은 이토록 참혹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법의 제2조에 명시돼 있듯이 북한 주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장소에서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이 이 법에 투영돼 있다.

    북한인권법의 국회 통과는 쉽지 않았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법 제정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국제사회의 흐름과 국내 여론에 떠밀려 민주당은 법 통과엔 합의했지만, 이후 법 이행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인권 문제에 대한 연구와 정책 개발 및 민간단체 지원 등을 담당할 북한인권재단 설립에 거부감이 컸다. 북한을 자극하는 보수 단체를 지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6년간 재단 설립이 표류하면서 북한인권법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민주당 등 북한인권법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남북 관계 특수성을 내세웠다. 분단 상황에서 인권 문제 제기는 실효성 없이 북한을 자극해 남북 관계만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논리다. 한마디로 북한인권법은 남북 대화의 장애물이라는 인식이다.

    우리가 북한 지역에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인권법의 실효성이 제한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노력을 멈출 순 없다. 누군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내가 구할 수 없다고 모른 척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제사회가 눈앞의 실효성만 따졌다면, 북한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과 이를 위한 대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꼭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인권 문제 논의 자체를 회피한다면, 이는 북한이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

    남북 관계의 특수성에 매몰돼 북한인권법의 발목을 잡는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하루빨리 여야 협의를 통해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 스스로 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최소한 물에 빠진 사람은 구조부터 해야 한다는 사실을 북한이 깨달아야 한다.
    기고자 : 홍용표 한양대 교수·前 통일부 장관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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