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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경국대전(經國大典)

    유석재 기자

    발행일 : 2022.08.04 / 특집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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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 분야(세금·관리·형벌 등) 319개 조항 … 노비 출산 휴가도 다뤘어요

    국립중앙도서관이 다음 달 25일까지 '아! 조선 법전의 놀라운 세계' 특별전을 열어요. 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최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로, 경국대전을 비롯한 조선 시대 법전 13종을 소개한다고 해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법전으로 잘 알려진 경국대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 왕조가 백성의 어려운 삶을 도와주는 데 관심이 많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답니다.

    나라 다스리는 데 필요한 법전이란 뜻

    '경국대전'의 '경국'이란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고, '대전'은 '중요하고 큰 법전'이란 뜻이에요. 결국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법전이라는 의미죠. 고려 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우리나라는 대체로 성문법(문서의 형식을 갖춘 법)보다는 불문법(문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관습법·판례법 등) 위주로 다스렸다고 해요. 조선 건국 이후 신흥 사대부들은 '명확한 기준을 지닌 법이 없기 때문에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법전을 편찬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1397년(태조 6년) '경제육전'이란 법전이 나왔고, 태종 때 이 법전이 '속육전'으로 보완됐습니다. 이후 7대 임금인 세조는 최항·노사신·서거정 등의 신하에게 '경국대전'의 편찬을 명했습니다. 다음 왕인 예종을 거쳐 9대 성종 임금 때인 1485년(성종 16년), 드디어 경국대전 편찬을 마치고 시행하게 됩니다.

    경국대전은 행정법과 민법·형법을 아우른 종합 법전으로, 이전(관리 조직과 임명 등), 호전(세금 제도 등), 예전(외교·과거시험·학교·혼례·제사 등), 병전(군사 제도 등), 형전(형벌·재판·노비 등), 공전(기술·건설 등)의 6개 분야에서 319개 법 조항이 담겨 있었죠.

    임신한 관청 노비에게는 80일

    이 법전은 백성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나라의 관심이 컸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신분제가 엄격했던 조선 시대에 노비는 관청에서 일하는 '공(公)노비'와 양반집에서 일하는 '사(私)노비'로 나뉘었습니다. 그런데 경국대전의 '형전'을 보면 공노비에 대한 놀랄 만한 조항이 나옵니다. "여자 노비에게는 아이를 낳기 전에 30일, 낳고 나서는 50일 휴가를 주고, 그 노비의 남편에게는 아이가 태어난 뒤 15일 휴가를 준다"는 거예요. 출산 휴가가 엄마 90일(쌍둥이 120일), 아빠 10일인 요즘 기준으로 봐도 그다지 짧은 기간이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미혼(아직 결혼하지 않음) 또는 비혼(결혼하지 않음) 남녀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요즘 많은 국가들이 저출산과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된다고 걱정하고 있죠. 조선 시대에는 특히 여성이 결혼하지 못하는 것을 큰 불행으로 여겼다고 해요. 그래서 경국대전의 '예전'엔 이런 조항도 있죠. "양반의 딸 중에서 서른 살이 다 되도록 생계가 어려워 시집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예조에서 임금에게 보고해 적당한 혼인 비용을 준다." 한마디로 '(당시 기준으로) 노처녀 결혼 자금'을 나라에서 지급해 줬던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엔 좀 섬뜩한 말도 나오죠. "그리 가난하지 않은데도 서른 살 넘은 딸을 시집보내지 않은 아비는 엄중히 처벌한다." 물론 옛날에 이랬다는 겁니다.

    백성 보호하고 탐관오리 벌주려 했지만

    요즘 대형 사고나 자연재해의 피해를 입은 지역은 긴급한 복구를 위해 국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지원을 하곤 해요. 그런데 농업을 국가의 가장 큰 산업으로 여기던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취지를 담은 법령이 있었습니다. 경국대전의 '호전'을 보면 "새로 개간한 땅이나 모두 재해를 입은 땅, 절반 이상 재해를 입은 땅, 병들어 농사를 짓지 못한 땅에 대해선 그 정도에 따라 조세를 면제한다." 농민의 생산력 유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백성을 위한 법적 조항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몰래 자기 이익을 챙긴 관리가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관리의 부패에 대해선 특히 민감한 조항이 많았습니다. 지위가 높은 친척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막는 '분경(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추구함) 금지제'와 친척 관계에 있는 관리들이 같은 관청에서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가 있었어요. 지방 하급 관리 중에서도 뇌물을 받고 부역을 면해 주거나 세금을 받을 때 수고비를 챙긴 부정부패 공무원은 엄격한 처벌을 받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만약 경국대전이 오래도록 원칙대로 잘 지켜졌더라면 조선 왕조는 계속 전성기를 누리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백성이 굶주리거나 민란을 일으키는 일도 없었겠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특정 가문 사람들이 중요한 관직을 독차지하는 '세도정치(勢道政治)', 아예 돈으로 벼슬 자리를 사고파는 '매관매직(賣官賣職)' 같은 일이 숱하게 생겨났어요. 백성에게 가혹한 세금을 거두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고요. 모두 경국대전에서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던 것이었습니다. 번듯한 법전을 만드는 일 못지않게, 그것을 공정히 지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보물로 지정된 경국대전]

    지난 6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경국대전'은 모두 세 종류입니다.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한 권 1·2,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권 1~3, 수원화성박물관이 소장한 권 4~6이죠. 삼성출판박물관의 '경국대전'은 이 중에서도 무척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는데요. '경국대전'이 완전히 편찬되기도 전인 1471년(성종 2년) 신묘년에 출간된 일명 '신묘대전'으로, 아주 이른 판본이랍니다.

    기고자 : 유석재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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