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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보다 지금이 더 위기… 서른 살 안중근에게서 희망을 봤다"

    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2.08.04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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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훈 장편 '하얼빈' 출간
    안중근 등 인물 내면에 집중해
    이토 히로부미 저격 전후 담아

    "자기 희망을 믿고 싸운 안중근은 당시보다 더 비극적인 지금의 동북아에 희망을 제시합니다."

    소설가 김훈(74)이 안중근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하얼빈'을 내놨다. '칼의 노래'(2001) '남한산성'(2007) 등에 이어 역사와 이를 뚫고 나가는 개인에 대해 또 하나의 묵직한 화두를 던진 것이다. 3일 오전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그는 "지금의 동북아는 이순신이나 안중근의 시대보다 더 돌파구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 짧은 시기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했다. 안중근은 작가가 젊은 시절부터 소설로 쓰고 싶었던 인물. 김훈은 "대학 영문과 학생 시절 안중근 신문조서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었다. 이 두 책이 결국 제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칼의 노래'를 통해 이순신을 그렸지만, 안중근은 최근까지 남겨 뒀다. 다른 작품들을 쓰면서 틈틈이 자료와 기록을 수집했다. 작년에 악화됐던 건강을 올봄 들어 간신히 회복하면서 평생의 숙제를 더 이상 미뤄둘 수 없었다. "이제는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빨리 완성하기 위해 소설을 극도로 줄여놨죠. 소설에 나의 서두름의 자취가 남아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김훈은 '작가의 말'에 쓴 이 문장에 담지 못한 말을 털어놓았다. "지금의 동양 평화는 안중근 시대보다 더 어렵고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다 무너져 가고 일본은 서양 제국주의의 먹잇감이 돼 있었는데, 지금 중국은 최고 강대국으로 미국과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으로 무장하고, 일본은 이에 대항해 군사 대국을 지향하고 있죠."

    그는 안중근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는다. 김훈은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이라는 허상을 제시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칼의 노래' 속 이순신과 안중근은 다르다"며 "자기 희망을 향해 나아가던 안중근식 '동양평화론'의 명분은 지금도 살아있다"고 했다. '동양평화론'은 안중근이 순국 직전 옥중에서 집필한 책이다. 세계사가 서구 열강과 이를 모방한 일본에 의해 약육강식의 형태로 전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덕주의 전통을 지닌 동양의 나라들이 스스로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훈은 안중근의 영웅성보다는 서른한 살 '청춘'이 지닌 생명력에 집중한다. "안중근의 청춘, 그의 영혼, 생명력을 소설로 묘사해보려 한 것이 저의 소망이었습니다." 이번 소설을 쓰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 역시 안중근과 우덕순이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만나 이토 살해를 모의하는 장면을 쓸 때였다. "두 젊은이는 이토 살해의 대의명분이나 추후 대책, 거사 자금 같은 것에 관해 단 한마디도 토론을 하지 않았어요. 시대에 대한 고뇌가 무거웠을 텐데, 그 처신은 바람처럼 가벼웠지요. '청춘은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는 "청춘은 '더 나이가 먹어서 완성되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그 순간에 이미 완성되어 폭발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고도 했다.

    다만, 김훈은 소설이 반일 민족주의를 다룬 것으로 이해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한 민족이 집단적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건 당연하지만, 지금처럼 계층 간 먹이 피라미드 관계가 적대적인 현실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현실 문제를 타개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기에는 빈약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의 숙제를 마친 김훈. 새 작품 계획을 묻자, "당분간 쉴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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