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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視角] 허무개그로 끝난 '정책 투표'

    이준우 사회정책부 기자

    발행일 : 2022.08.03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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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실이 최근 온라인에서 국민 제안 정책 10건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기는 투표를 진행했으나, 1일 '어뷰징(abusing·반복 행위를 통한 클릭 수 조작)이 있었다'는 이유로 당초 계획한 우수 제안 3건을 선정하지 않는 촌극이 발생했다. '득표를 많이 한 상위 3개 제안을 실제 국정에 반영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나 10개 제안이 모두 56만~57만여 표로 비슷한 득표수를 기록하자 '변별력이 없다'며 이를 취소한 것이다.

    국민제안 정책투표는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폐지하고 대체재 성격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특정 이슈가 여론 몰이로 변질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제안을 받는다는 점에서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1만3000여 건에 달하는 정책 제안이 접수될 만큼 반응도 괜찮았다.

    하지만 첫 번째 단추인 10개 후보 안건 선정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9900원 K-교통패스 도입', '반려견 물림 사고 견주 처벌 강화', '휴대폰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같은 정책은 별다른 논란이 없었으나 '최저임금 차등 적용',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무 폐지' 등은 이해집단 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이다. 특히 최저임금은 대다수 기업·근로자,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고용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해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온갖 진통을 겪는 이유다.

    대다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농업·음식업 등 일부 소득이 낮은 업종에서는 좀 더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적용하자는 '차등 적용'을 요구한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대로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차등 적용은 무산됐다. 결국 차등 적용은 정부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됐는데, 느닷없이 국민 제안 투표 안건에 오르면서 여러 혼란이 생겼다. 상위 3위 안건에 들지 못하면 정책 추진이 밀리거나 폐기될 수도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투표를 독려하며 '차등 적용을 이뤄내자'는 글이 수시로 올라왔고, 반대로 노동계에서도 '생존에 직결된 문제를 투표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냐'는 반발이 쏟아졌다.

    현 정부가 대통령 직속 1호 위원회로 국민통합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이 무색하게 정책 투표는 '편 가르기' 오명만 뒤집어 쓰게 됐다. 토론과 합의를 거쳐 양쪽 이해집단을 끊임없이 설득해도 모자랄 최저임금 문제를 투표에 올리면서 빚어진 결과다.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1~3위만이 아니라 10건 모두 관련 부서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열흘 동안 투표를 하더니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결론 낸 것이다. 국가 우선 추진 정책을 뽑겠다고 변죽만 울려 놓고는 허무 개그만 보여줬다.
    기고자 : 이준우 사회정책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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