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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 미니픽션] (2) 워터파크 블루스

    서효인·시인

    발행일 : 2022.08.03 / 문화 A1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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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둥이 등쌀에 끌려간 워터파크… 바가지 귀신·가짜 파도가 넘실거렸다

    칠말팔초(七末八初). 덥다, 무덥다. 휴가철,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어딜 가나 사람들로 들끓는다. 서늘한 문장 속으로 홀로 조용히 피서하는 건 어떨까. 여기 찜통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할 글들이 있다. 짧고 강렬하며 얼얼하다. 김동식·서효인·이응준. 젊은 작가 3인이 지면에 펼치는 삼인삼색 납량 특집 ‘여름의 노래를 들어라’.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한다.

    부부는 중간에 잠시 헤어졌던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7년을 연애하고 결혼에 이르렀는데, 연애 기간 내내 변변찮은 여행을 한 적 없다. 여행은커녕 뭔가 활동적인 데이트 자체를 선호하지 않아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같이 읽거나 하는 게 다였다. 다소 고전적인 커플이었다고나 할까. 여름이면 바다나 계곡에 가야 한다지만 둘의 지론은 에어컨 아래가 피서지라는 것이다. 둘의 성격은 결혼 후에도 별로 바뀐 게 없어 지금도 맞은편에 에어컨을 틀어놓은 거실 소파에 기대앉아 있기가 최적의 피서라 생각한다. 최대한 안락한 자세로 캡슐 커피로 뽑은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띄워 마시며,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즈 음악을 틀어놓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부부에게는 쌍둥이 아이가 있다.

    아이의 생각은 그들 부부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평일이면 주말에 어딜 가냐 물어보고, 주말이면 지금 당장 어디 안 가냐고 성화다. 초등학교 2학년인 주제에(!) 학교에서 끼리끼리 모여 주말의 행선을 자랑하듯 늘어놓는단다. 누구네는 강화도로 캠핑을 갔다더라 누구네는 제주도로 한 달 살이를 갔다더라. 누구네는 호텔에 갔다더라… 그리고 누구네는 워터파크를 갔다더라 등등. 때마침 티브이에서는 워터파크 광고가 나왔다. 인공 구조물에 물을 채운 거기에서 복잡한 인파는 보이지 않았고, 선남선녀가 그야말로 시원하게, 여름을 만끽하는 장면을 보고 아이는 선언했다. 오는 주말에는 워터파크에 가야 한다고.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워터파크에 간 적이 전혀 없으니,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곧장 최저가 티켓을 검색했다.

    과연 워터파크는 인플레이션의 집약판이자 체험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4인 가족 얼리버드 종일권 티켓 할인가 12만4000원. 이게 맞나? 맞다. 종일권을 샀으니 종일 있어야 하는데 외부 음식은 반입 금지라고 한다. 이게 맞나? 맞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예전에 사놓은 수영복이 맞지 않는다. 두 벌 사니까 6만원. 이게 맞나? 맞다. 수영복을 제외한 것들은 대여하기로 했다. 짐을 놓고 잠시 쉴 수 있는 선베드 대여비가 2만5000원. 풀장에 들어가려면 아이와 어른 모두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는 구명조끼가 개당 7000원. 이게 맞나?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사람이 붐비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여자가 오픈 시간에 도착할 수 있게 재촉했다. 그래서 오전 10시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이미 장사진이었다. 쌍둥이를 여성 탈의실에 데리고 들어가며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자에게는 약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 셈이지만, 아내의 표정을 떠올리자 오줌이 마려울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물놀이를 시작했다. 워터파크는 어디든 사람 반 물 반이었다. 저들도 우리처럼 아이들 성화에 나선 것일까. 아니, 우리보다는 조금 더 활동적인 부모일지도 모르지. 저들끼리 모여 온 10대 아이들의 에너지를 보니 왕년 생각도 조금 났지만, 새로운 의욕이 생기지는 않았다. 인파에 혹시 아이 손을 놓칠까 봐 겁났고, 피부가 따끔따끔한 게 이 물이 과연 괜찮은 건지 하는 걱정도 상당했다.

    금방 배가 고팠다. 간이 테이블로 구색만 갖춰 놓은 야외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치킨은 어디에나 어울리니까 콜라와 치킨 세트를 시켜본다. 어제 튀겨놓은 듯한 닭튀김 한 컵과 콜라 캔 하나가 1만4000 원. 그래도 따뜻한 걸 먹으면 좋겠지. 셀프 봉지 라면이 5500원. 그래도 밥이 있으면 좋겠기에 주문한 즉석밥은 4400원. 자취생 시절보다 못한 이 밥상이 다 해 얼마지? 뭘 먹는지 모를 식사를 마치고 다시 풀장으로 향했다. 메인 풀장 무대에서는 공연이 한창이었다. MC가 싸이의 춤을 따라 했다. 댓 댓 댓 라이크 댓, 댓 댓 라이크 댓. MC가 동서남북을 손가락으로 찌르자 환호성이 극에 달했다.

    그때 아이가 손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남자는 조금 귀찮아져 다그치듯 물었다. 또 어딜 가자고? 아이가 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이제 집에 가자고. 벌써 집에? 응 집에 가서 쉬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 한 시절 그토록 좋아하던 아이 엄마의 스무 살 시절의 얼굴이 떠올라, 스치듯 그러나 분명하게 떠올라, 남자는 감격에 겨워 말하는 것이다. 옳지 우리 딸, 집에 가자. 역시 그들의 아이는 부부의 아웃풋이 분명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었다. 그 짧은 시간 까무룩 잠이 든 아이들, 바깥 온도는 32도였지만, 부부에게 가장 시원한 순간이었다.
    기고자 : 서효인·시인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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