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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납치·약탈로 쑥대밭… '갱단의 나라' 된 아이티

    장민석 기자

    발행일 : 2022.08.03 / 국제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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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피살 1년… 무법천지로

    중남미 섬나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빈민촌인 시테 솔레이 지역은 지난달 'G9'과 'G-PEP'이라는 두 갱단의 유혈 충돌로 쑥대밭이 됐다. 지옥 같은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목격자들은 "사람이 산 채로 불타는 모습을 봤다" "소녀들이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갱들이 다른 갱단에 협조했다며 민간인을 칼로 무참히 죽였다"는 끔찍한 증언을 쏟아냈다. AFP통신은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신흥 갱단 G9이 다른 갱단 G-PEP의 본거지 시테 솔레이로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두 갱단 간 전면전이 발생했다"며 "열흘 가까이 계속된 충돌에서 470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고 말했다. 또 가옥 140채가 완전히 파괴됐고, 주민 3000여 명이 집을 떠났다고 한다. 갱단에 강제로 끌려간 마을 소년들은 '방패막이'가 되어 목숨을 잃었다.

    카리브해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가 작년 7월 대통령 조브넬 모이즈 피격 사망 이후 갱들이 활개치는 '무법천지'의 나라가 됐다. 우후죽순 생겨난 최근 조직들이 활동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살인과 약탈, 납치, 파괴 등을 일삼으면서 인명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유엔은 올 1월부터 6개월 동안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만 갱단 충돌로 10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은 현재 아이티에서 활동하는 갱단이 90여 개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군과 경찰조차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을 키운 이들 갱단은 전국의 40% 이상 지역을 장악했다고 한다. 일부 지역에선 법원과 학교, 경찰서 등을 확보하며 정부 행세까지 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이 살해된 아이티가 완전히 갱단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갱들의 천국' 아이티에서 가장 기승을 부리는 범죄는 몸값을 노린 납치다. 지난해에만 모두 1000여 명이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4~6월에만 326건의 납치가 일어났다.

    갱단의 수가 크게 늘면서 자기들끼리 영역 싸움을 하고 무력 대결을 하는 사건도 잦아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포르토프랭스 북부에서 '400마우조'와 '셴 메샹'이라는 경쟁 조직이 충돌했다. 아이티 인권단체 '국가인권수호네트워크(RNDDH)'는 "두 갱단의 전쟁으로 2주간 148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갱단이 사용하는 권총과 기관총 등은 주로 미국에서 밀반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NDDH 관계자는 "미국에 있는 아이티인들이 본국에 무기를 보내 치안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며 "세관 등 부패한 관리가 이를 눈감아주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아이티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 히스파니올라의 흑인 노예들이 1804년 프랑스 세력을 축출하고 세운 나라다. 한때 설탕·커피 생산지로 번영을 누리며 유럽의 중남미 식민지 중 가장 부유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뒤발리에 부자(父子)의 30년 세습 독재에 나라가 거덜났다.

    지난 2010년에는 대지진이 발생해 최대 30만명이 숨졌다. 이후 '비극의 땅'으로 불리게 된 아이티는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했다. 작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765달러(약 231만원)로, 중남미 평균(8340달러)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이티가 가까운 미래에 정상적인 나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아리엘 앙리 총리가 정권을 잡았지만, 경찰 무장력이 갱단보다 훨씬 더 열악해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앙리 총리는 지난해 10월 건국 영웅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했다가 "이제부터 내가 총리"라고 선언한 G9 갱단 두목 지미 셰리지에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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