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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구글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기로 했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발행일 : 2022.08.02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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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강의 시간에 구글클래스룸이라는 프로그램을 쓰게 됐다. 출결 체크는 물론 온라인에서 첨삭 지도도 가능하며, 과제 제출과 마감 시한 준수 여부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했다. 썩 내키지 않았으나 그것이 요즘 강의 방식의 도도한 물결이라고 했다.

    그런 파도쯤이야 거스른다 한들 익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굳이 그 프로그램 쓰기를 거부해서 퇴물 내지 늙다리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내가 충돌했다. 나는 아날로그 애호가이지만 반(反)디지털 전사도 아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는 사람인 동시에, 마트 계산대에서 휴대폰을 내미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동 타자기와 워드프로세서와 PC통신과 인터넷을 거쳐 모바일 시대를 거뜬하게 살고 있다. 이마에 3나노 반도체 칩을 심는 시대가 온다 해도 견딜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결제 버튼을 누르고 생년월일과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 뒤 인증 번호를 발송하고, 휴대폰에 도착한 인증 번호를 쳐 넣고 나서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르는 나의 손동작은, 리드 추측을 증명하는 허준이나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임윤찬의 손동작처럼 원숙하고 재빠르다. 그깟 인터랙티브 수업 프로그램쯤이야 배우면 그만이다. 처음엔 좀 낯설겠지만 익숙해지면 손아귀에 쥔 호두알처럼 달그락거리며 굴러갈 것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 강의 몇 번 만에 구글클래스룸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강생들이 스스로 출석 체크를 하다 보니 출석 부를 일이 없어졌다. 출석을 부르지 않자 얼굴에서 이름을 연상할 수 없었다. A4 용지에 출석부를 만들어 네모 칸에 빗금을 치면서 출석 여부를 확인하는 게 훨씬 일목요연했다.

    첨삭 기능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릇 첨삭이란 글의 어떤 부분을 지우고 고쳤다가 다시 살리기도 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 어떤 문장을 끼워 넣었다가 통째로 지우기도 하는 일이다. '눈을 떴다'를 '눈 떴다'로, 다시 '눈이 떠졌다'로 바꿨다가 끝내 '눈을 떴다'로 되돌린 것을 보며 글쓰기 배우는 사람은 첨삭하는 사람의 고뇌를 상상한다. 그런 상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이전에는 과제를 이메일로 제출받아 인쇄한 뒤 빨간 펜으로 첨삭을 했다. 이것을 스캔해 스크린에 띄우고 왜 그렇게 고쳤는지 설명하며 수업했다. 좀 번거로운 방법이었지만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적절히 섞은 효과적 방식이었다. 게다가 공들여 쓴 글쓰기 과제가 첨삭으로 피 칠갑이 된 것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충격 요법이었다.

    무엇보다 구글클래스룸이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로운 스트레스가 됐다. 왜 시가총액 2000조원짜리 기업에 개인 정보를 갖다 바치고 그들이 정한 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속을 썩여야 하는가. 그깟 프로그램이 날고 기어봐야 와이파이 먹통 되면 빈 깡통에 불과하다. 구글은 빨간 펜으로 첨삭한 종잇장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대학에서 엑셀 프로그램을 쓸 기회가 없었던 나는 신문기자가 되는 바람에 엑셀을 따로 배우지 않았다. 컴퓨터에 문서 창을 열어 글 쓰는 직업이다 보니 표를 만들어 정렬하고 계산할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친구들을 비롯해 회사원들은 대개 엑셀을 자유롭게 쓸 줄 안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라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차일피일 하다가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엑셀 없이도 큰 불편 없이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효자 상품인 엑셀이 그럴진대 구글클래스룸은 오죽하랴. 스마트폰에 깔렸다가 지워지는 무수한 앱처럼 명멸하고 말 것이었다.

    한때 배우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던 것 중 상당수는 몰라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음악 애호가이면서도 "나의 음악 듣기는 CD가 마지막"이라며 유튜브를 거부하는 70대 선배님의 심정을 이해한다. 유튜브가 공짜 음악을 들려주는 대신 얼마나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가. 컴퓨터 대신 원고지에 펜으로 글쓰기를 고집하는 작가나 칼럼니스트들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무엇을 쓰느냐'에 집중하느라 '어떻게 쓰느냐'에 변화를 줄 여유가 없다. 글을 컴퓨터에 써야 한다는 건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도그마일 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산에 오르고 땀을 흘리는 것, 꼭꼭 씹어 먹고 물을 많이 마시고 푹 자는 것, 꼭 알아야 하며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구글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와이파이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의 귀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기고자 :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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