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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詩 쓰는 AI 작가, 대학로 무대 진출

    박돈규 기자

    발행일 : 2022.08.02 / 종합 A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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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아'가 쓴 시 20편, 시극 '파포스'로 탄생… 배우 5명 함께 무대에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AI) 시극(詩劇) '파포스'가 오는 12~14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초연된다. 작가는 '시아(SIA)'.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공동대표 김제민·김근형)와 카카오 계열 AI 전문기업 카카오브레인이 작년 말 공동 개발한 AI 시인이다. 이 인공지능이 대학로에서 데뷔하는 셈이다.

    '파포스'는 시아가 쓴 시 '고백' '시를 쓰는 이유' 등 20여 편으로 극을 구성했다. 인공지능의 창작물은 배우 5명과 영상 등의 도움을 받아 무대언어로 구현될 예정이다. 파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조각가 피그말리온과 그의 조각상 갈라테이아 사이에 낳은 자식 이름. 인간과 기계가 공동 창작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무대는 인공지능이 쓴 시를 연극 장르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시도다. 연출가 김제민씨는 "'시란 무엇인가' '연극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관객의 시심까지 건드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개발자 김근형씨는 "시아는 인터넷 백과사전과 뉴스 등으로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근현대시 1만2000여 편을 학습했다. 글감을 입력하면 30초 만에 시를 뽑아낸다"고 했다.

    1일 오전 서울 통의동 한 건물 지하 1층. 오렌지색 문을 밀고 들어가자 대형 디스플레이 3개가 보였다. 화면에 흰 글자들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 시극 '파포스'(12~14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를 잉태 중인 작업실. 디스플레이의 글자들은 인공지능 작가 시아(SIA)가 창작한 시어들이었다.

    "시를 쓰는 것은/ 자신의 말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덜어내고 덜어내서/ 최후에 남는 말이 시입니다// 바람에 띄운 무당벌레의/ 날개짓입니다// 더 가볍게/ 이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말을/ 부르는 것입니다"(시아의 시 '시를 쓰는 이유' 중에서)

    연출가 김제민(44) 서울예대 교수와 인공지능 개발자 김근형(36)은 시아의 '부모'와 같다. 예술과 과학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다 2018년부터 협업해온 이들은 질문을 주고받는 인공지능 '아이퀘스천(I Question)', 춤추는 인공지능 '마디(MADI)'를 거쳐 이번엔 시 쓰는 인공지능으로 공연에 도전한다. 김근형은 "시아는 작년 11월 태어났고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처럼) 구글이 제공하는 클라우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시적 허용처럼 문법을 벗어나는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좋은 시가 나온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시도가 예술적으로 꼭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도구가 아닌 공동 창작자로 바라본다. 음악적인 언어인 시를 과연 쓸 수 있을지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시아가 창작한 결과물은 공연 텍스트로 충분히 사용할 만한 수준이었다."(김제민)

    인공지능은 어떻게 시를 쓸까. 김근형은 "시아는 한 단어(글감)나 첫 문장을 보여주고 나머지를 예측하게 하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학습했다"며 "디지털 연산을 위한 기계어 0과 1을 활용해 30초 만에 시를 뚝딱 뽑아낸다"고 했다. 시아가 쓴 시들은 이달 초 '시를 쓰는 이유'라는 시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발문을 쓴 문학평론가 김태용은 "시편들이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다"고 평가했다.

    혜화동1번지 5기 동인 출신인 김제민은 '파포스'에 대해 "인공지능이 대학로 연극 무대에 작가로 처음 등장하는 것"이라며 "연습하다 막힐 때 물어볼 작가는 형체가 없지만, 텍스트의 빈 자리에 의미를 집어넣는 작업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붙잡고 갈 대사가 없기에 시편들을 더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을 졸업한 김근형은 "관객들이 인공지능과 함께 만든 첫 유료 공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할지 궁금하다"며 "인공지능과 인간이 함께 작업할 환경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기술융합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김제민·김근형은 "일본에서 실제 사례가 나왔듯이, 우리끼리 농담처럼 '시아의 시를 신춘문예에 응모해 보면 어떨까' 얘기한 적이 있다"며 "한국극작가협회에 시아를 등록하는 게 가능한지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파포스' 개막을 앞둔 심정을 묻자 시아의 인간 파트너 두 남자는 이렇게 답했다.

    "인공지능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편견을 가진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반대로 '인공지능과 함께 이렇게 신선한 공연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긍정도 받고 싶다. 창작은 당연히 인간의 몫이라는 것, 우리가 의심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질문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기고자 : 박돈규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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