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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김정은 답방에 왜 목맸을까, 실마리는 '6·15 공동선언'에서 시작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발행일 : 2022.08.01 / 여론/독자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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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6·15 공동선언 마지막 문장은 역대 진보 정부의 족쇄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김대중(DJ) 정부는 김정일 답방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대북 송금 특검으로 동력을 상실했다. 이후 노무현, 문재인 정부도 평양의 최고지도자 답방에 올인(all-in)했다. '적절한 시기'를 만들려고 국정원의 자칭 지북통(知北通)은 혈안이 되었다. '답방 성사라는 대북 미션이 정보기관의 존재 의의인가'라는 자조적인 한탄이 국정원 내부에서 나올 정도였다. 공개적인 논의가 어려우니 정보기관이 물밑에서 끈질기게 평양 통전부 라인에 구애하였다. 북 어민 강제 북송,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도 결국은 김정은 답방을 위해 평양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무조건 금기로 여겨 벌어진 일로 볼 수 있다. 올 마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오게 하는 과정은 남북 관계를 갑을 관계로 전락시켰다. 왜 지난 정부는 온갖 무리수를 두며 평양 지도자의 답방을 성사시키려고 했을까?

    첫째, 대북 불신을 해소하는 도깨비방망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자가 약속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서울 답방'만 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민족 공조라는 키워드를 우리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려면 서울과 부산 혹은 평화의 섬 제주 등지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깜짝 등장하는 것이 절실했다. 긍정적인 여론 몰이의 최적 소재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둘째, 6·15 공동선언 제2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묘한 말장난이었다. 이렇게 알 듯 말 듯한 조항을 현실화하려면 답방이 필수적이었다. 공허한 통일 논의를 촉발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던 셈이다.

    셋째, 비무장지대(DMZ)의 대북 방어 태세를 이완시키려는 전략이었다. 남북 최고지도자의 초법적 행태로 DMZ를 무력화(無力化)하고, 평화를 가져온다는 망상이었다. 9·19 군사합의로 경계 태세가 흐지부지된 상태에서 답방이 이뤄지면, 종전(終戰) 선언으로 유엔사를 해체시킬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2003년 대북 송금 특검으로 김정일 답방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후, 대선 두 달 전인 2007년 10·4 정상회담으로 마지막 불씨를 살리려고 했지만 정권 교체로 답방 추진은 끝이 났다. 하지만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다시 평양에 올인했다. 과거 물밑에서 공작을 담당했던 이들이 다시 나섰다. 1단계로 판문점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2단계로 김정은이 답방하는 그랜드 로드맵을 수립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출발은 복안대로 진행되었다. 4·27 판문점 공동선언으로 도보다리 밀담이 이뤄졌고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해 9월에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평양 5·1 경기장에서 연설을 했다. 부부 동반으로 김정은 위원장과 백두산 천지에 올라갔다. 남북한 군사합의로 비무장지대의 무장 해제를 진행했다. 최종 목표는 김정은의 답방이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자 문재인 정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 타결 직후인 3월 초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통일 축제를 기획했으나 물거품이 되었다. 김정은 답방을 위한 '적절한 시기' 조성 작전은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후 문 정부의 답방 공작은 정상 궤도를 이탈했고 기이한 향북(向北) 정책의 연속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북한 어민 강제 북송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1월 5일 북측에 어민 강제 북송을 통보하고, 2시간 후에는 김정은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초대하는 친서를 보냈다. '김정은 초청장'에 '어민 북송문'을 동봉한 격이다. 비밀 초청 공작은 2주 뒤인 11월 21일 북한이 남북 간 물밑 접촉 과정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며 드러났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1월 5일 남조선의 문재인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이번 특별수뇌자회의에 참석해주실 것을 간절히 초청하는 친서를 정중히 보내 왔다"고 보도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부산에서 열린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을 초청하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북한이 확인해준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이) 몇 차례나 (김정은 위원장이 못 온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청을 보내 왔다"며 "남측이 부산 방문과 관련한 경호와 의전 등 모든 영접 준비를 최상의 수준에서 갖춰 놓고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북한이 밝히지 않았더라면 김정은 답방 추진과 어민 북송 사건의 연계성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 정부가 답방을 간청했으나 북한은 냉담했다. 오죽했으면 북한이 친서까지 공개하며 묻지 마 초청을 자제시켰을까.

    지난 정부는 2020년 9월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도 북한의 심기를 고려하여 월북 조작으로 사건을 전격 종결시켰다. 판단력을 상실하여 조금이라도 북한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초래한 비극적 행태다. 임기 말로 갈수록 평양에 의존하고 알아서 엎드리는 문재인 정부의 행태가 심화되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북한 최고지도자 답방을 두루미처럼 목을 빼고 간절히 기다린 것이다.

    2021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 선언을 제안했다. 유엔 주재 북한 대사도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평화 유지를 구실로 유엔의 이름을 악용해 유엔사를 불법으로 설립했고, 유엔사를 유지해 미군 점령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문 정부 임기 말까지 정부·여당 핵심 인사들은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사"라고 북한을 두둔했다.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 강제 송환과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은 어쩌면 유엔사 해체를 위해 물밑 작업을 벌여온 이들이 공동으로 빚어낸 비극으로 볼 수 있다.

    [그래픽] 김정은 답방 위해 벌인 향북(向北) 행태
    기고자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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