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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이 주최하는 '미래 지향적 한중일 협력: 지속적 평화, 공동 번영, 공통된 문화'를 주제로 하는 국제 포럼이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기조연설을 부탁받았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현재 3국 관계가 어느 때보다 껄끄럽고 불편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나설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꾸어 응낙하였습니다.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은 제가 총리로 재직하던 2011년 서울에 개설되었고 그때 우리 3국도 서로 협력하여 이 지역을 EU처럼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졌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얘기는 다 접어두고 소박한 제 생각을 털어놓기로 작정하였습니다.

3국 간 교역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교역 내용도 상호 간 부품·소재 등 중간재 및 원천 기술과 완제품의 수입·수출을 통하여 각자 무역 이익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3국은 윈윈(win-win)하며 상호 의존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3국 간 갈등은 커지고 있습니다. 전통적 국제정치학 이론이나 통념은 국가 간에 상호 의존성이 증대하면 갈등이 줄어들게 된다고 보는데 3국 간에는 이것이 잘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 학자들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이를 '아시아 패러독스(Asia Paradox)'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한 미국과 '중화 부흥의 꿈'을 내세우는 중국은 G2 국가로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고, 따라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3국 간에는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패러독스라고 할 것은 아닙니다.

이런 때일수록 향후 이 지역을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들려는 3국 정부와 국민의 의지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 나라는 이웃 국가로서 마음대로 이사 갈 수도 없으니까요. 어려운 일이지만 3국이 신뢰를 회복하고 감정적 대립과 불신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선 각국 정부나 정치권이 한중일 문제를 국내 정치와 결부하지 않을 것, 3국 국민들이 쟁점이 되어 있는 현안들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다가설 것,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에게 다가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다양한 민족, 언어, 종교, 문화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가 하나로 통합하여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루고자 하는, 인류 역사의 위대한 작품 'EU(유럽연합)'와, 견원지간이던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 개선 사례에서 배우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 등 서양 세력이 만주 지역을 지배하려 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한중일 3국이 '동양평화회의'라는 정치 공동체를 만들고, 3국 청년들로 구성된 군대로 군사 공동체를 만들고, 경제 발전을 위해 공동 은행을 설립하고 공통 화폐를 발행해 경제 공동체를 만들자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 평화론을 소개하였습니다. 안 의사의 선각자적 사상은 오늘날 EU의 기본 구상과 맞닿아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는 얼마 전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에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영화 '브로커'에 출연한 한국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중국 여배우 탕웨이가 출연한 영화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우리 3국이 자주 만나야 할 미래의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감독상을, 탕웨이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어도 우리는 좋아했을 것이라는 제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기고자 :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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